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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평점 :
파리, 센 강 위에 특이한 수상서점 종이약국. 상상속의 구상이지만 왜 강 위에 서점을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습기에 약한 책인데... 오랜 시간동안 괜찮을까? 이 서점은 사고 싶은 책을 그냥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서점 주인인 페르뒤씨가 손님의 증상(?)에 맞게 처방해주는 말 그대로 종이약국, 인 것이다. 의사겸 약사로 봐야겠지? 하지만 그 자신도 내면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 어느날 잊고 살았던 편지 한 통이 그를 과거의 깊은 추억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초반부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1984<조지 오웰>,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서정적 가정약방 <캐스트너>, 말괄량이 삐삐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눈먼자들의 도시 <주제사라마구> 등등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종이약국이라는 가정이 의문스럽지 않게 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손님에게 혼자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방은 너무 밝지 않아야 하고 손님에게 친구가 될 고양이가 있어야 하죠. 그리고 이 책을 천천히 읽으세요. 책을 읽는 틈틈이 푹 쉴 수 있도록 말이죠. 손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어쩌면 눈물이 치솟을 수도 있어요. 자신 때문에, 지난 세월 때문에. 하지만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겁니다. 그 남자가 손님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아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지금 죽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자신을 다시 좋아하게 될 겁니다. 자신을 추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겁니다."/p21
인기소설을 구입하러 왔던 손님에게 그녀가 원하는 책을 팔지 않으면서 페르뒤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삶들을 겪어보면 저렇게 원하는 책을 내 줄 수가 있을까? 그의 나이는 이제 쉰, 사랑에 실패하고 근 이십녀년간을 혼자 지내오면서 책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아마도 수상서점이라는 컨셉이 그의 깊은 내면 어딘가에 언제든 떠날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는 강위의 배. 라는데 있지 않을까?
"일단 조당 씨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괜찮죠. 조당 씨? 우선 나는 책들을 약처럼 팝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겨우 백 명의 사람만 소화할 수 있는 책도 있어요. 심지어는 단 한사람을 위해 쓰인 약도, 그러니까 책도 있죠." /p37
"책은 의사인 동시에 약이기도 해요.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죠. 손님이 안고 있는 고통에 맞는 적절한 소설을 소개하는 것, 바로 내가 책을 파는 방식입니다." /p39
책은 항상 충분할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할 것이다. 책은 예측 불가능한 모든 것 속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삶에서, 사랑에서. 죽음에서도. /p51
페르뒤 씨는 그 얇은 책을 집어 들었다. 조당은 여기저기 연필로 밑줄을 긋고 그 옆에 질문들을 써 놓았다. 책은 바로 이런 식으로 읽히고 싶어 한다. 독서는 끝없는 여행이다. 기나긴, 그야말로 영원한 여행. 그 여행길에서 사람들은 더 온유해지고 더 많이 사랑하고 타인에게 더 친근해진다. 조당은 그 여행을 시작했다. 이제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세상과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걸 가슴속에 품게 될 것이다. 페르뒤 씨는 책장을 앞으로 넘겼다. 거기,그 구절, 그 부분을 페르뒤도 유난히 좋아했다. "사랑은 집이다. 모름지기 집 안의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덮어두거나 '아껴서는' 안 된다. 완전히 사랑 속에 거주하면서 그 어떤 방도 어떤 문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다투는 것과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것, 두 가지 모두 동시에 중요하다. 서로 단단히 붙드는 것과 다시 밀쳐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사랑의 모든 방을 이용하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령들과 냄새들이 그 안에서 제멋대로 설친다. 등한시된 공간과 집들은 음험하게 악취를 풍길 수 있다......" /p172
페르뒤가 이십대에 만나 불같이 사랑했던 마농이 홀연히 사라지고, 그녀가 보내왔던 편지를 읽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이십년 후에나 개봉된 편지로 알게된 진실을 마주하고 파리를 떠나 그녀를 만나는 긴 여정에 오르면서 왜?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는것과 읽지 않은것.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책을 읽기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내가 더 나아졌다라는 생각은 아직 해보지 않았던것 같다. 어쩌면 작정하고 무엇인가 찾아보겠다고 작정하며 읽는것보다 자연스럽게 내게 스며들거나, 의문이 생기면서 알고싶어지는 책을 읽으며 찾아가면서 나만의 책이 되는게 아닐까? 페르뒤와 조당의 긴 여정에 대해서 쓰다간 스포일러가 될 듯하여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사실 2주넘게 들고 다니며 몇 장씩 읽다가 자리 잡고 앉아서 한 번에 읽어내려간 책이라 여운이 여느책 못지 않게 길었다 한 사람이 과거의 상처로 부터 회복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읽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은 생소한 독일 작가의 책을 종종 읽는 요즘. 니나 게오르게 와의 만남은 다른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며, 또는 한 해를 준비하면서 읽어보는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말하는 걸 들으려고 질문해요. 아니면 자신들이 성취할 수 있는 뭔가를 들으려고,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말은 들으려 하지 않죠. 날 사랑해? 이 말이 여기에 해당돼요. 이 질문은 일반적으로 금지되어야 할걸요."/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