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의 연인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다음 여행을 가게 된다면 내심 타이베이를 가봐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품은지가 2~3년 즈음 된 듯하다.   타이베이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이곳의 일상을 떠나 다른곳으로 들어가보고 싶다면 타이베이가 어떨까? 하고 생각해왔던것 같다.   <타이베이의 연인들>을 읽기 시작했을땐 타이베이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는 사랑이야기? 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고속철도 건설,에 관련한 배경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도쿄에도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가 있을 법하면서도 없다고 하루카는 늘 생각했다.  시부야의 센터 거리만큼 북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시모키타자와만큼 세련되지도 않았지만, 예를 들면 여름 축제가 끝난 후 같은, 어쩌다 보니 미처 돌아가지 못한 젊은이들이 신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듯한 분위기가 이곳 타이베이에서는 자주 느껴졌다. /p54-55


예를 들면 계획이라는 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거라고 인식하는 사람과 예정대로 진행되기에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리 간단히 메워지지 않는다.  일본인이 볼 때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은 돌을 허공에서 놓으면 땅에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지만, 타이완에서는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게 그정도로 당연한 셈이었다.  /p89


마음이란 혀의 감각까지 바꿔버리는지 모르겠다.  뭔가 하나가 버겁다고 느끼는 순간, 염주처럼 잇달아 이 땅의 것들이 싫어진다. /p94



타이베이를 여행하던중 하루카는 렌하오를 만나게 되고, 연락처를 받고 연락하기로 했지만 사라진 연락처, 그 이후 타이베이를 방문해 렌하오와 다녔던 곳을 찾아보지만 다신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10년의 세월이 흘러 하루카는 타이베이에 고속철도 사업과 관련하여 일본을 떠나 타이베이에서의 생활을 하게 되고, 직장동료를 통해 근황을 알게된 렌하오는 일본의 건설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는걸 알게된다.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서로를 잊지 못햇던건 아니었지만, 10여년전 그들의 만남은 서로의 인생진로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일본과 타이베이를 오가며 간간히 연락하고 만나면서, 서로 지내온 시간들과 현재에 대해 조심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이야기의 전개는 이들이 중심이 아니라 고속철도 사업을 근간으로 하는 역사적인 배경과, 일본과 타이베이의 종전시대를 지나 현대를 살아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와 맞물려가며 진행되고 있다.  500페이지라는 분량을 읽어가며 페이지가 줄어드는지 모르고 읽어갔던건,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나도 매끄러웠고 타이베이를 설명하는 글을 읽으며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 했던것 같다.  여행프로그램이나 여행가이드북에서 보았던 음식들, 골목들, 지명들..  그중 제일은 음식과 날씨에 대한 묘사가 세세해서 타이베이의 스콜속에 있고, 그들의 포장마차 음식들이 눈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하루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그가 하루카와 보낸 단 하루의 추억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게 분명했다. 되풀이되는 말이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뭔가 바뀔 이야기는 아닐지 모른다.  황호에도 그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하루카가 이곳 타이완에서 일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타이완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자기와 만나지도 못했다.  하루카와 에릭의 만남은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생각할수록 그 작은 만남이 여러가지 일들의 출발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p162



하루카는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에릭을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갔다.  구 년이라는 세월이 도려내져서 구 년 전과 지금이 잇닿은 것 같았다.  시간이 만약 리본 같은 것이라면 구 년의 길이를 잘라내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인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도려낸 구 년의 리본은 어디에 있을까.  하루카는 무심코 발밑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두 사람의 발 밑에 잘라낸 리본이 떨어져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하루카는 크게 휘젓는 에릭의 팔로 시선을 돌렸다.  착각이라는 건 알지만 에릭이 그 손에 리본 끄트머리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카는 하늘하늘 흔들리는 리본의 다른 한쪽 끝을 잡으려고 반 발짝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흔들리는 리본은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p246-247



설령 똑같은 마음을 품었다고 해도 그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역시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단수이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의 아파트를 찾던 내가 지금 여기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렌하오가 찾았던 내가 여기 있고, 내가 찾았던 그가 여기로 와줬으면 좋을 텐데 하고.  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은 역시 내가 찾아 내지 못한 그였고, 그가 찾아내지 못한 나일 뿐이다. /p404



도쿄에 애인이 있었던 하루카, 10년만에 그녀와 연락이 닿았으나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망설였던 렌하오, 식민지 시절 타이베이에서 살다 일본 패전이후 일본에 살며 타이베이를 잊고 살았던 가쓰이치로, 꿈도 없이 막막하게 칭메이친을 만나고, 신칸센과 인연이 시작된 첸웨이즈.  이들의 삶이 조금씩 닿았다가 멀어지고, 7년여의 시간이 흐르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 흐름속에 나를 던져놓고 함께 지나가는 것처럼 생생했던 것 같다.  이야기의 큰 배경은 고속철도, 신칸센, 그리고 신문기사로 시작되는 조금은 거창해보이는 소설이었지만 결국 사람의 이야기.   책의 표지에 동경만경과 비교하는 글이 있었지만, 동경만경과의 사랑과는 다른 색깔의 느낌이었던것 같다.  '사랑'이라기보다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를 타이베이와 일본의 정서로 버무려진 글을 읽은 느낌?  담백하지만 애틋하면서도 삶에 애정이 있는 글이 었던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그대의 감상이 궁금하다.  난 급 떠나고 싶어졌거든. 타이베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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