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동네, 곤페이토 상점가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보관가게가 있다.  예전엔 양과자를 팔던 상점이었는데 그곳을 지키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이 시작하게 된 가게.  시대가 변하고 살면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보다 잊고 싶거나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어찌 처분해야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쌓아두고 쌓아두다.. 결국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속에 묻혀버리거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버려지기도 했다.  <하루 100엔 보관가게>의 가게는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찾게 되는 곳 아닐까?  잠시 곁에 없어지면 내게 어떤 의미일지, 또는 믿음직스러운 주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하는 곳.


집을 나간 어머님이 필사적으로 모은 돈입니다.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모았겠어요?  죽을 만큼 고생했을 거예요.  그걸 남에게 주다니, 왜죠?

주인의 표정에 망설임은 없습니다.  상쾌해 보였어요.

늘 멋있는 주인이지만, 지금은 반짝반짝 빛납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어요.  주인은 어머니의 마음을 받아서 충분히 만족한 거죠.  그 만족감은 남에게 나눠줄 수록 더 커지는 거예요.

저는 보고 있으면서 보지 못했습니다.

주인의 끝없는 어둠과 고독을.

아마 가방이 그것들을 떨쳐주었겠죠.

그러니까 이제 필요 없는 겁니다. /p052

​보관가게.

이곳에는 끈적끈적한 뜨거운 감정도 질척질척한 음울한 감정도 없다.  애초에 가게 주인은 자전거가게의 주인아저씨처럼 손님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았다.  보관하고 싶으시면 맡아드리지요.  이런 분위기다.  그렇다고 일을 아무렇게나 대충하는 타입은 아니고 잔잔한 성실함이 있었다.  그런 곳이다.

그래, 가게 주인의 손에서 느껴지던 것이 그거다.  성실함은 왠지 차갑고 납작한 느낌이다.  자전거가게의 주인아저씨에게 느꼈던 것은 좀 더 일그러지고 울퉁불퉁했다.  ​/p074


​가게의 주인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물건을 맡기러 오는 사람의 목소리와 이름으로 물건을 맡아두고, 기한내에 찾으러 오면 정확히 돌려준다.  기일이 지나 찾으러 오지 않으면 그 물건은 주인의 것이 되며 그런 물건들은 구청직원에게 연락해서 상의하에 처리하게 된다.  이야기의 주체는 가게입구에 쳐진 포렴, 가게 안 양과자점일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쇼케이스. 그리고 이름이 '사장님'인 고양이가 들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인인 기리시마 도오루는 그 자리에 항상 있을것만 같은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점자책을 읽는다.  이야기는 포렴이나 장식장, 고양이가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이끄는 이야기보다 더 집중하게되고 가게안의 모습이나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영화나 실생활의 드라마 같은 느낌보다 애니메이션의 기분을 느꼈던건 아마 주변사물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둠을 견디고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고, 고독을 견디고, 제멋대로인 손님을 견디고, 지금은 이렇게 소음을 견딘다.  그는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받아들임이 그의 인생 전부로 보인다.  아직 젊은 그가 그런 인생을 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p120

중학생 시절엔 동아리를 마치고 정육점에 들르며 수도 없이 이 길을 지났는데, 신경도 안 썼다.  보관가게는 행복한 시기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p153

​"저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물건과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이 일을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는지도 모르죠." /p182

때로는 내 손을 떠나 잠시 잊고 있는것만으로도 조금 나아지는 기분을 느낄때가 있다.  누군가가 맡아주었으면 좋겠지만, 안심하고 맡길만한 곳도 없고 내가 찾고 싶어지지 않으면 알아서 처분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러면 내 손으로 정리를 할 수 밖에..... 조용한 동네어귀 하루 얼마의 보관료를 받고 물건을 맡아주는 곳이 있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맡기고 싶어할까?  누군가 맡긴 물건을 찾기위해 돌아올지도 모를 그곳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준다면 난, 그곳을 얼마나 찾게 될까?  몇 일을 들고만 다니다가 앉은 자리에서 후다닥 읽어버린 <하루 100엔 보관가게>.  읽으면서 조금은 편안해지고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다고 느낀건 나만이 아니었을것 같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해보면 좋을것 같은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소재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던 책이었다.  여름이 가기전 휴가지에서 읽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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