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달한 한 해를 시작하자고 노래를 부르면서 선택한 책이 왜 이 책이었을까?  읽은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책속의 진희에 대해 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는 중입니다.  98년도 출간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책이었고 지금 읽어도 크게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이야기 였던건 '사랑' 그리고 같은 '여자'의 이야기 이기 때문이었을거에요.

 

 

사람이란 모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고, 어느 순간은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고, 어느 순간은 주위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또 어느순간 돌아보면 아무도 없기도 했다.  마치 약속된 주기를 지키지 않는 밀물과 썰물처럼. 그러므로 내가 셋에 대해 말하는 것은 셋을 맞추려고 애쓴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마음속에 셋 정도의 균형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무거운 짐을 처리할 때의 방식과 같다.  여러 개의 가방 안에 나눠 담으면 사랑도 덜 무거워진다.  그 가방을 들고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선 채로 잠깐 궁리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더이상 그 가방안의 내용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 가방을 그대로 두고 돌아와버리면 그만이다. 한 개의 가방에 담았다가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지만 여러 개라면 상실에도 단계가 있고 고통에도 완충이 생겨날 것이다.  /p11

 

 

내가 사는 것은 언제나 현재이며 나는 지속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 않는 내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일정한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p74-75

 

 

십여년도 훨씬 전의 시대에 진희라는 인물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민감'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교수, 이혼녀, 세 명의 애인 이라는 수식어로 표현 되는 진희라는 여자는 자신의 삶에 빠져들기 시작한건 그녀의 삶의 군데 군데에서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마주했기 때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내 삶을 다른사람의 인생인양 멀찌감치서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건  정말로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걸...그녀가 사랑을 나누어 담듯이 분산했다면 그 사랑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아예 담기를 포기했던것이 조금 달랐다고 할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물론 고통스럽다.  그러나 세상에 고통은 있게 마련이고, 나에게 그 고통이 오지 말란 법은 없다.  마침 지금 고통의 시간이 왔을 뿐이다.  머리 위의 구름처럼 시간이란 머무는 것 같지만 결국은 흘러가버리는 존재이다.  이 시간은 반드시 지나갈 것이고 다시 다른 시간이 머리 위에 드리워진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면 고통을 견디기가 조금은 나아진다./p116

 

 

사람은 언젠가는 떠난다.  그러니 당장 사람을 붙드는 것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전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내가 끊임없이 사랑을 원하게 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사람은 떠나보내더라도 사랑은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사랑을 할 수가 있다.  사랑에 환멸을 느껴버린다면 큰일이다.  삶이라는 상처를 덮어갈 소독된 거즈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꼴이다. /p127

 

 

사람과 만나고 사랑하고 떠나고 이러한 과정들은 살아가며 평생 반복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진희처럼 사랑을 간직할 만한 여력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한 줄 한 줄에 더 눈길이 가고 밑줄을 긋고 눈에 마음에 담고 싶었던건 사랑에 대한 환멸을 이미 경험해 버린 제 마음에 위안을 주는 글 들이었기에 더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희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세상의 이목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을 거에요. 

 

 

이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아닌지 따져보는 데에 사랑할 시간을 다 써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랑은 누가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오는 운명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사랑을 하고 안 하고는 취향이며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엄연한 능력이다.  /p128

 

  

사람의 삶에 헤어짐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을 완전히 부려놓을 수 있는 장소, 거기에서 영원히 멈출 만한 시간이란 없었다. 삶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 흐름에 따라 주소를 옮기는 것뿐인데 일일이 헤어짐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p253

 

 

읽으면서 너무 좋았던 글 이었고 개인적인 생각이 너무나 많아져 글로 표현하기가 더 어려웠던 책이었습니다.  사랑에 집착했고 그 사랑의 끝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극복할 수 없었던 시간을 보내왔기에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은 아직도 집착하려는 마음이 크기에 어렵고, 힘들고,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그런 숙제인 것 같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구나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거겠지요.  삶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고 있기에 그 마지막이 내가 아닐지라도 지금 현재에 충실할 수 있기를...호불호가 갈리는 책 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랑하고 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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