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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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이라는 소설을 주변지인들의 입소문으로 먼저 알게 되었지만 왠지 아껴두었다 읽고 싶은 책이었어요.  어쩌면 스릴러특유의 분위기를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밝고, 쉽게 읽어지는 류의 책들을 가까이 하다보니 읽어보기도 전에 골라내는 습관때문이었던것 같아요.  사실 읽어야 할 리뷰책들이 책장에 한 줄을 차지 하고 있었지만 올 해를 넘기기 전에 읽고 싶은 마음에 책장에서 꺼내들었답니다.  그리곤 밤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세령호와 등장인물들과 얽히는 몇 일을 보냈던 것 같아요.

 

 

나는 카메라플래시를 받으며 서 있었던 열두 살 이래로 허둥댄 적이 없다.  소년분류심사원에 다녀온 후부턴 분노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호감을 표해와도 관계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안다, 놀라면 허둥대야 정상이다.  모욕다하면 분노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  나도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당황하고, 분노하고,수치심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곁을 내줘서는 안된다.  거지처럼 문간에 서서, 몇 시간씩 기다려서라도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사는 나의 힘이다.  아니, 자살하지 않는 비결이다. /p28-29

 

 

'한 남자는 딸의 복수를 꿈꾸고, 한 남자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 한다' 이 한 줄로 사건을 짐작하게 하지만 이야기들을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목적과 다양한 시선에서 이야기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책장을 덮을수 없었던 것 같아요.  사건이 있었던 세령호와 댐에 대한 설명은 그려질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되어있어 댐과 댐아래 침수된 마을까지도 상상해보게 됩니다.  전직야구선수인 현수의 가족과 세령호 마을유지인 치과의사 영제의 가족, 그리고 그의 아이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을것 같은 소설가 지망생인 승환의 이야기는 그들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되며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됩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화자들이 많아지다보면 자칫 산만해지거나 집중이 되지 않을것 같은데 오히려 사건에 더 몰입하고 그들 각자의 이야기, 상황, 심리상태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때까지도 영제는 상황에만 몰두했지, 본질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죽음을 예감하고 아이의 궤적을 쫓으면서도 '내 딸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실재하지 않았다.  세령과 마주치던 순간에야 '죽음'이 그에게 돌진해왔다.  그는 훅, 나뒹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등허리가 휘청하고 어깨가 덜그럭대듯 흔들거렸다.  몸이 통째로 박살날 것 같은 압박감과 자신의 딸이 알몸사체로 구경꾼 앞에 누워 있다는 데 대한 모욕가가 자신의 세계가 이런 식으로 파괴될 수도 있다는 데 대한 분노와 어떤 식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무력감과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폭풍처럼 그를 뒤흔들었다.  마흔두 해를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충격이었다./p183

 

 

던져진 공을 바라보는 것처럼 내 손을 떠나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준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그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건의 그날밤 '어쩌면'이라는 상황을 빼고 본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러나 일어나버린 사건.  인물들의 각기 다양한 가정환경과 그들이 일군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지키고자 하고 실현하고자 했던것은 환상 이었을까요?  전 이 작가님의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정말 대단한 글이었어요.  사건의 결말은 페이지가 몇 장 안남은 순간까지도 손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두근거리는 2012년의 시작 함께 시작해보셔도 좋을책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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