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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후지와라 신야 지음, 강병혁 옮김 / 푸른숲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유난히 비가 잦았던 올 여름. 흐릿한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빗방울 때문인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긴 했지만 올 여름은 감정의 기복이 어찌나 심한지 제 자신이 참 변덕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구요. 빗소리가 좋은 새벽, 그냥 잠들기엔 억울하고 책장을 뒤적거리다 생일때 선물로 받았던 후지와라 신야의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를 꺼내들었어요. 책표지의 흐릿하지만 살짝 눈부신듯한 풍경과 제목에 이끌렸을지도 모르겠어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날들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결국 그것은 그녀가 스스로 호흡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일기를 쓰지 않게 된 것은 단지 피곤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않았기에 '기록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없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p156 (고마워! 도쿄)
"사람의 인생이란, 어른이 됐다고 해서 그렇게 극적으로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어쩌면 그때와 조금도 바뀌지 않았는지도 몰라요."/p163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첩에 쓰여 있는 것)
슬픔, 만남, 죽음, 희생, 사랑, 배려...매일 반복 되는 삶 속에 알게 모르게 지나가고 있는 것들은 단어로 표현되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이 있을거에요. 나이가 들면 당연히 어른이 되는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나서 보니 몸은 어른이나 속은 그렇지 않다는걸 알게 되고 있어요. 마음 한 켠에 쌓여있던 모르는 척 했던 감정들이 한 줄의 문장, 한단락의 문단을 보고 몇 번을 다시 읽어보곤 했답니다. 정말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어느새 글에 빠져들어 위로 받는 듯한 느낌, 힘내라고 응원해주며 토닥여주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어요. 애써 잘 찍으려 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글과 어울리는 사진은 인생도, 글도, 사진도 선명하고 뚜렷하고 정해진 틀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조금은 촛점이 맞지 않아도, 흔들려도 그 사물만을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있다면 괜찮다는 그런 느낌..? ^^
자유로운 학생 시절을 거쳐 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육체적, 정신적으로 관리당하는 일상에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그때까지의 인생이 갑자기 단절되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지 않는다. 그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러나 사직한다고 해서 딱히 도망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많은 사람들이 서른이 넘을 즈음 자신이 아닌 다른 인격의 가면을 쓰기 시작해, 그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피해보려 한다. /p165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첩에 쓰여 있는 것)
"나는 내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왔어. 하지만 내 나이가 되고 보니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도 있다는 걸 알았지. 자신의 행복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타인의 행복이 된다는 것을. 그것은 슬픈 일이지만 인간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지. 신도 그러길 바랄 거야." /p187 (예순두 송이와 스물한 송이의 장미)
꼭 성공하지 않아도,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고 슬픔이 와도 그 슬픔을 마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살아가는 순간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 거에요. 하루 한, 두 편 짧게 읽어도 몇 일 이면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은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마음을 희생한, 타인에 대한 한없는 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후지와라 신야)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마음도 쉬어줘야 할 것 같아요. 마음의 휴게소 같았던 아름다웠던 책,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