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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나서 - 152 True Stories & Innocent lies ㅣ 생각이 나서 1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변하고 사라질 것들에 너무 무거운 마음을 올려놓지 않으려 한다. 내일이면 변할지도 모를 사랑을 너무 절실하게 전하지 않기로 한다. 아주 오래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이야기는 꼬깃꼬깃 접어서 열리지 않는 서랍에 넣어두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치는 걸음을 문득 멈추고 조금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가벼운 인사만을 건네기로 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워지고 미안해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리석도록 깊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말이다. 생각이나서, 라는 그 말은... - 황경신
'황경신'이라는 이름 석자는 책보다는 온라인으로 떠도는 글들을 통해서 먼저 알게 되었다. 마음이 허 할때 찾아보고는 하는 글귀들에 정말 '아!'라는 감탄사가 들어갈 정도로 내 마음을 표현한 것 같은 글이면 그 중 황경신 작가의 글이 있곤 했다. 가끔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렇게 함축적이고도 마음에 와 닿아 절절하기까지 한 글을 하며 언젠가 그녀의 책을 꼭 찾아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연말 그녀의 신간을 온라인 서점을 검색하던 중 보게 되었다.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지인 몇 분께 선물하고 나도 지인에게 연말 선물로 받게 되어 읽게 되었다. 연말을 보내며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새해를 맞이하며 펼쳐들게 된 책.. 그런데 생각했던 것만큼 가볍게 다가 오지 않는다. 아니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는게 맞을 것 같다.
이토록 무수한 반복. 이처럼 무수한 반복. 이렇게 무수한 반복, 같은 생활이고 삶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도 저 네개의 음을 무수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일어난다. 먹는다. 일한다. 잔다.
소유한다. 사용한다. 낡는다(또는 가치가 사라진다). 버린다.
떠난다. 머무른다. 이별한다. 돌아온다.
만난다. 사랑한다. 헤어진다. 잊는다.
좋아한다. 미워한다. 후회한다. 아무 상관없어진다.
삶의 수많은 노래들. 각 노래마다 반복되는 지속저음들. 그 위에 우리는 새로운 변주를 시작한다. 저음이 지속되는 한, 변주도 지속된다. 어떤 것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추하다. 하나의 변주가 아름답다가 추해지기도 하고 즐겁다가 슬퍼지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쓸쓸하다.....중략.....저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리하여 결국은...마지막은 마이너로 끝나는 것이다. 인간이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니까. 나도 그리고 당신도. <무수한 반복> /p133
사진이 많은 에세이였기에, 그리고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끄적인 글들이라 편하게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시작부터 눈으로 읽어지는 글이 아닌 마음과 머리로 생각하며 읽어야 했던 글이라고 할까? 연초를 맞아 가볍게 읽으려고 마음 먹었던게 큰 걸림돌이었을까? 어쩌면 작가의 감성이 나와 같기를 마음먹고 들었던 책이어서 약간의 반발심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간혹 글이 되기 위해 쓰여졌다는 느낌의 글을 마주할 때면 살짝 책을 덮어두었다 들기도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가끔 이런 느낌을 들때가 있다. 왜일까? 마음으로 전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걸까? 읽으며 답답하게 안 읽어지곤 할 때면 책 속의 사진들만 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글보다 사진이 더 마음에 들었던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진은 인물이나 특정 장소만을 찍는거라 생각해왔는데 소소하게 지나치는 일상까지 담아낸 저자의 사진은 때로는 글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 이라는 말에 나는 열렬히 동의한다. 또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와 나는 어떤 시기에 놓여 있는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중인가, 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중략.....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이미 만났고 앞으로도 만날 것이다. 나는 그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가. 앞으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와 동행하거나 그를 따라갈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그러니까 문제는 내가 오늘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가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p157-159
사진이 많은 에세이를 즐겨 읽는 이유는 글과 사진으로 하여금 따스함을 느끼고자 해왔음 이었나보다. 나만의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건 분명 멋진 일 인것 같다. 글을 갈무리하며 책을 다시 보니 포스트잇이 많이도 붙어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고자 하는 글들을 표시하고자 붙이기 시작했는데 내 마음이 이 열리질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조금 흘러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지금의 감상이 조금은 달라질까? 그건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끄적인 152개의 진실과 거짓말들을 내 입맛에 맞게 읽고자 했지만 끝내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