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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트렁크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남녀... 책의 제목이 독특해서 눈길을 더 끌었던 책 인것 같다.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나는 좁은 뒷자리에 네 명이 끼어 앉아야 할 일이 많았었다. 어릴때야 작은 몸집들이라 어찌 끼어 타고 다녔지만 키가 크고, 몸도 조금씩 불어나면서 슬슬 짜증들이 나기 시작했다. 장난삼아 "넷 중에 한명은 트렁크에 타고 가는게 어때?" 하고 이야기 하곤 했지만 정작 트렁크에 타 볼 기회는 그 누구도 갖지 못했다. 트렁크는 차에 필요한 물품들이나 짐을 싣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가끔 정리가 잘 되어있는 차의 트렁크를 볼때면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다'라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소설의 소재이기도 한 '트렁커'는 멀쩡한 집을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을 말한다. 그럼 멀쩡한 그들은 왜 집을 두고 트렁크에서 잠을 자는 트렁커 생활을 하고 있는걸까?
나는 지금처럼 내 멋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며 단순하고 경쾌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p215 그녀...온두
"쉽게 말하면, 기우는 반대쪽에 힘을 실어줘야 해요. 안 그러면 무너지죠. 사람이나 물건이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이 있어요. 그 끌림이 사랑일 때도 있고, 증오나 분노일 때도 있죠. 무너질 것들은 서둘러 무너져라, 그것이 내 생각입니다. 다른 밸런시스트들과는 생각이 다르죠.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p234 그....름
유능한 유모차 판매원인 그녀 온두, 밸런시스트인 그 이름...그들이 트렁커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건 어린 시절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피해 숨어들어가 자신을 보호 하고자 했던 아늑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그 공간이 우연히 자동차의 트렁크가 되었을 뿐 아마 어느 공간이라도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그곳이 그들의 '트렁크'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심한 정신적 충격과 그 이후 어린 시절 잠깐 지냈던 곳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던 온두가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던 공간이 트렁크였다. 그렇게 트렁커 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어느날 공터의 주인이라며 나타난 이웃 트렁커 '름' 그도 아버지의 잔인한 폭력을 피해 트렁커가 되었다. 어쩌면 어렸던 그, 그녀에게 '트렁크'란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장소이며 삶을 연장하기 위해 잠시 편하게 쉴 수 있는 은신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그가 우연히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면서 게임을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조금씩 꺼내 이야기하며 숨은 기억들의 퍼즐 맞추기를 시작한다. 트렁커가 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며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한 과정들이 어쩌면 그냥 잊혀져도 좋았을 과거일지도 모르겠지만 과거의 아픔이 현실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어떤 해결책이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퍼즐을 맞추어가며 아픔, 외로움, 추억, 고통, 다정함, 자랑스러움등을 고백하면서 그들이 저도 모르게 트렁크가 아닌 온두의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을 맞았을 때 이젠 과거의 아픔을 어느정도 이겨냈다는 해피엔딩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고은규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때로는 너무 어두운 이야기에 안타까워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그녀와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던 건 그들의 아픔이 짙고 어두웠던 만큼 극복하는 것도 기다렸기 때문이 아닐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트렁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소 그리고 도피와 은폐의 장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처주고, 상처받고, 상처를 극복하는 일의 연속인지 모른다. 세상에는 온두와 름과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네고 싶다. -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