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깊어가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책 표지라 해야할까?  짙은 보라색 바바리 코트에 비닐 우산을 쓰고 어딘가 가는 듯한 여인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하고 안쓰러워 보여 손을 잡아주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책표지.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나' 또는 '영란'의 삶의 모습은 평온하던 삶에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인생의 기로에서 그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는지를 담아낸 이야기이다.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 하나, 어느날 사고로 아이가 죽고 남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세상을 뜬 후 삶을 어찌 살아야할지 방황하던 그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마음은 나도 모르는 새에 희미해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자리 잡았다.  '어떻게'가 빠지고 '무엇'이 그 자리에 들어오면서 정말로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p117

 

 

그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픔조차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을 것 같다.  감히 그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그 의미가 없어지고 난 후의 기분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한가지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삶을 살다가 그 목표가 없어 졌을때, 또는 이게 아닌가? 싶을 때 갑자기 커다란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무엇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영란'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맞닥뜨린 슬픔을 얼마나 정면으로 자세히 마주 볼 수 있을까?  그 시간들을 회피하고자 노력만 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녀의 힘겨움을 덜어주거나 이해해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예의를 갖춘 이별을 하지 못해서 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뒤늦었지만, 정중한 이별의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올까.  그러나 그런 순간이 온다 해도 그때 하는 이별의 인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또 한 사람, 황망한 이별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던 그 여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여자를 연민하는 것으로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려는 수작인가.  그러나, 그저 아팠다.  자신이 아프니, 다른 이의 아픔이 비로소 아프게 다가왔다.  단지 그뿐이었다.  내 살이 아리니 다른이가 아려하는 것도 눈에 보였다.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저 아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p129

 

 

또 다른 등장인물 이정섭은 자신의 실수로 상처받은 가족들을 멀리 떠나 보내고 혼자 생활하며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며 생활하고 있다.  멀리 떠나있는 가족이 때론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상처받았을 가족을 생각하면 자신의 입장은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한편 조금은 서글프다.  어느날 아내의 편지를 받고 마음으로부터 그녀도, 자신도 용서하게 되면서 다른이의 아픔도 자신에게 아픔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정섭의 아내가 정섭에게 쓴 편지를 보고 '예의를 갖춘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중한 이별이란 그 순간 보다는 시간이 흘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예의를 갖춘 이별...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또 그의 마음을 읽으며 괜히 눈물이 흘렀다.  행복하지 않았던 사랑이 어디 있으며 아프지 않은 이별이 어디있을까?  매 시간 모두가 안녕하기를 그 순간이나마 진정으로 행복했기를...

 

 

"힘은 없어도 그래도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니까."

누가 상 줄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나 자신을 탓하면서, 자신을 자기가 미워하면서, 자신을 자기가 원망하면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결국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자신을 자기가 예뻐해 주는 것, 그뿐 이더라고. /p200

 

사람 마음의 움직임에도 비행길이나 뱃길처럼 정해진 항로가 있다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그러나 마음의 갈래는 한 곳으로만 지어져 있지 않고 마음의 길 또한 한 방향으로만 나 있지 않으니 마음에 부는 바람인들 천변만화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243

 

 

살면서 내가 의도하는 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저마다 다르고, 또 무한한 변수가 가득한 삶을 살고 있으니 살다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벌어지는 일들을 되고, 그 과정들을 이겨 내야하는 건 당사자들이다.  그 과정에만 정체되어있는게 아니라  새로운 인연들도 마주하게 된다.  그때 그 상황을 마주할 것 인지 피해서 돌아가야 할지는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오는 결과들은 감수해야 할 본인들의 몫이 아닐까?  간혹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흐름이었다 하더라도 내게 닥친 슬픔이라면 피하지 않고 내 마음에 이는 변화들을 마주하며 그 변화들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로 커져 가기를....

 

 

세상을 살다 보면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고 바로 그런 순간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끝끝내 미움보다는 사랑을 선택하게 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p235-6

 

 

어쩌면 좋은일들 보다 힘든 날들이 더 많은 인생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간의 행복한 순간들이 있기에 그 순간들의 추억, 기억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는건 아닐까?  비록 오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언젠가 다시 내게 올 행복의 순간들을 위해 지금 조금 힘겨운 순간들, 그로 인해 내 마음에 이는 미움쯤은 조금 더 큰 마음으로 사랑해 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각기 다른 인생, 각기 다른 이야기 그러나 행복이나 슬픔의 기준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내 아픔이 상대방의 아픔보다 덜하다고 느껴졌을때 '아 그래도 나는 저 사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며 만족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목포지방 특유의 사투리나 지역적인 이야기들이 익숙하지 않아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일상의 억지스러움이 묻어 나지 않아 편안하게 읽었던 이야기였다.  책장을 덮으며 주르륵 흘러내리던 눈물이 무엇 때문인지 지금도 설명할 길은 없지만 읽어가며 마음에, 눈길이 닿는 글들이 많아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였던 이야기 였던 것 같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제 마음에 이는 변화를 사랑하기를

그 사랑의 기운으로 그의 삶이 늘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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