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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웃 동생의 블로그에 새 리뷰가 떴는데 제목이 눈에 띈다. <돈 없어도 난 우아한게 좋아> 호기심에 들어가서 읽어보니 이 책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흔 두 살 싱글의 로맨스. 제목과 책표지가 시선을 사로 잡아서 더 궁금해졌을 지도 모르겠다. 읽어야 할 책들도 있고 다음에 읽자고 살짝 미뤄두었던 책을 그 동생이 선물해줘서 다른 책들은 뒤로하고 먼저 읽기 시작했다.
"우리 앞으로 동반 자살하기 전날의 심경으로 사귀어 보지 않을래?"
진짜다. 황홀하다. 실현될 리 없는 여정인데, 생각만 해도 둘의 세계가 달콤해진다. 나는 직감했다. 이 남자, 아주 좋은 제안을 하는 사람이다. 내게는 득이다. /p13-14
시작부터 낯선 문체가 잘 읽어지지 않더니 어느덧 책 중간 중간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마흔 두 살의 싱글녀 지우. 그녀가 살아오며 느끼고 생각한 사랑, 그리고 운명이라 생각하는 남자 사카에와의 만남. 엉뚱한 제안을 하고 그런 제안이 그녀도 싫지 않다. 동반 자살하기 전날의 심경은 어떤 것일까? 이런 제안을 하는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어가며 그만큼 사랑도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 어떤 감정이었더라. 낯설고 어색하다. 사랑이란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들, 나이가 나이테처럼 한 겹씩 나를 감싸는 것 처럼 나를 보호하기 위해 상처받지 않겠다고 버티기만 한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사랑=결혼' 이라는 어릴때부터의 고지식한 생각 때문에 즐겁고 행복해야 할 '연애'가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과 숙제처럼 나를 짖누르다 결국 포기했던것 같다. 사람을? 사랑을? 어떤걸 내려놓았던 걸까?
짝사랑을 할 수 없는 여자. 그게 나다. 기다리게 한 시간만큼 발걸음 가볍게 달려오는 남자와 친밀해지고 싶다. 흔히 말하는 어른의 사랑 따위, 나는 모른다. 나는 언제든 서로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 그래야 만나지 못하는 시간에 은근한 맛이 배는 것이다. 마침내 부둥켜안은 두 사람의 몸이 뜨끈한 열기에 납땜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로 이어진다. 혼자 보내는 시간의 행복감은 둘이 마주하는 황홀한 시간의 수하. 그는 어른스럽지 못한 내가 찾아낸, 나의 보물. /p50
나는 짝사랑을 잘하는 여자. 그녀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이 사람이다 싶으면 마음이 먼저 기울기 시작한다. 일단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면 흘러넘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 마음과 신경이 그곳으로 몰리게 된다. 그렇다고 감정이 헤프거나 한 건 아니다. 그러다 막상 연애가 시작되면 물이 끓어오르다 식는것 처럼 이내 상대에 대한 열정이 사그러 들기 시작한다. 왜일까? 아마도 상상속에 만들어진 상대의 이미지를 사랑한걸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은 그냥 그리움만으로 좋은걸까?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닌 상호작용, 양방통행이어야 하는데 어쩌면 일방통행에 너무 오랜시간 익숙해져서 소통의 방법이 낯설기 때문일지도..... 막상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때 혼자 그리워하며 상상해왔던 것보다 마음 한구석이 더 허전해지는 건 상대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아서 였을까? 아니면 내 자신을, 내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걸까?
나는 아무래도 돈 냄새를 풍기는 남자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돈이 없어 오히려 홀가분한, 그런 남자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렇다고 가난뱅이 마니아는 절대 아니다. 돈이 있으면 편리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다. 사랑만 있으면 경제력 따위는 어쩌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철부지 같은 생각은 꿈에도 없다.....중략......이불 속에서 한숨 돌리고서야 관계가 시작된다. 그렇다. 나는 사랑의 줄다리기와는 인연이 없는 여자. 좋아하니까, 날 좋아해 주니까, 사귄다. 그뿐이다. 베리 심플. /p74-75
아까워 내밀지 못한 마음은 쓸모가 없어지고 끝내는 유통 기간마저 지나고 만다. 그런 것들만 마음에 꼭꼭 보존하다 보면 새로운 마음이 들어 찰 장소가 없어진다. 그때껏 나는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늘 아까워한 탓에 결국은 썩어 버리게 했다. /p100
"어느 한쪽이 먼저 죽으면, 그때는 같이 죽는 거나 마찬가지지. 마음은, 틀림없이 뒤따라 죽을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계속, 같이 죽는 날을 위한 길동무." 남은 인생, 이 남자가 아닌 남자는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를 만나기까지 헛걸음을 꽤나 많이 했다. 조금 피곤하지만 깔끔한 이부자리에서 서로를 껴안고 잠들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천국을 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 이 이부자리처럼 낡았다. 하지만 둘이라면 함께 솜을 다시 터는 방법을 알 수 있다. /p193
'날 좋아해주는 사람 좋아하기' 마음처럼 될까? 오히려 그 편이 더 어렵다는걸 안다. 결국 내 마음대로 흘러가 버릴거라는걸 안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내 마음을 들키기보다 혼자 그 마음을 키우는 그 순간을 사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유치한 사랑놀이가 불가능 할 것 같이 생각되는 마흔 두 살,그녀의 사랑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멈추어 몇 번을 다시 읽기도 하며 움찔 했던건 그런 그녀의 흘러가는 듯 한 감정이 부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표현처럼 내게 사랑이 어렵고 유하게 흘러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까워 내밀지 못한 마음이 쓸모없어지고 유통기한도 지나 썩어버리게 되서 고여있는 그런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돈 없이 우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책을 읽다 오래도록 마주하게 되는 문장들 사이로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마흔 두 살의 동갑내기의 로맨스는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사랑이란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할 감정일테니까. 흘러가는 감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시길....가을의 시작을 아름다운 이야기와 함께 시작하게 되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가을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