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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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의 작가로 책을 읽기 전에 국제도서전에서 멀찌감치 뵈었었고,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도 그의 마력같은 글 솜씨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계서 더욱 궁금했던 작가분이셨다.  고령화 가족은 제목도 제목이고 책표지가 그닥~이어서 기회가 되면 읽지 뭐..하고 말았는데 지인분께서 이 책을 읽다가 내 생각이 나셨는데 꼭 추천해주고 싶으셨다며 선물해주신 책이었다.  가족소설을 즐겨읽거나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많은 분들이 추천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져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 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p141

 

 

정말 이런 가족 구성원이 가능한 걸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가족들이다.  마흔 여덟 살, '오인모' 충무로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나 영화는 망했고,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났다.   영화제작비는 고스란히 그에게 떠넘겨 졌고 그가 실패한 것은 영화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결국 수중에 한푼도 남지 않게 되자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집엔 쉰 두 살 전과 오 범의 경력과 백 키로가 넘는 거구의 형, '오함마'가 살고 있다..  얼마 뒤 동생인 미연도 딸을 데리고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는데...  각자의 사연도 다르지만 엄마의 지붕아래 모인 세남매들,  조카, 칠순의 모친까지 가족구성원의 평균연령이 49살이다.

 

인모의 눈으로 바라본 가족들은 자신도 그렇지만 한심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TV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평범한 가족들은 일상에선 존재할 수 없는 판타지 인걸까?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내 입장에선 그들 가족의 세계가 판타지 처럼 느껴진다.  멀쩡하지 못한 가족들이 모여서 부대끼고 살며 알게 된 엄마의 비밀, 형과는 이복형제, 여동생과는 이부남매. 아... 이 가족 정말 어떻게 된거지?  점점 꼬여만 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과연 이런 상황들을 잘 해결 할 수 있는 걸까? 하고 궁금해진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이리저리 한 세월 이끌려 다니기도 하는게 세상살이일 터인데 때론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p273

 

 

인모의 눈으로 바라본 가족들의 이야기에서 엄마의 삶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냥 평범한 아줌마, 엄마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엄마에 대해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한 기억이 없었다고 생각한 그에게 가족들과의 이야기로 하나 둘 씩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과거 속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자신의 자식이 아닌 한모를 자신들과 똑같이 키워준 모성이 가득한 엄마, 한때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가정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던 엄마.  사회에서 실패하고 무참히 깨져서 돌아온 자식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며 격려하고 끌어안는 여인 역시 엄마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을 꾸미는데 있어 게으름이 없던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보다 여인으로의 삶을 더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인모의 엄마는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자 했던 여인이 아니었을까? 

 

우린 부모님의 모습을 정형화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빠니까, 엄마니까 그들이 남자, 여자로서의 삶보다 우리의 부모로 남아주기를 원해서 생각하는대로 살아주시기를 원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들도 부모이기 이전에 자신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건 아닐까?  결혼이라는, 자식이라는 울타리가 생기면 '자신의 삶' 이라는건 가족들을 위해 조금씩 희생하며 살아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가족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면에 우리들의 삶과 비교해 본다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인모가 애정을 가질 수 없었던 가족들을 그 자신이 조금씩 깨어지면서 가족을 이해하게 되고 가족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던 게 아닐까?  어떤 가정이나 약간의 문제나 골칫거리(?) 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삶은 살아가는 이들이 각자의 울타리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나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가족에 대해서, 그래고 내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고래 이후 6년만의 작품이라고 하니 다시 6년을 더 기다려야 그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암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p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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