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꾼>이라는 짧은 제목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꾼...옆에 부연설명이 제법길다.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문든 어린시절 동생들과 듣던 전래동화 테이프가 생각났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셨던 어린시절 책을 읽기엔 좀 귀찮을때면 우리 형제들은 쪼르륵 누워서 전래동화 테이프를 들으며 낮잠을 청하곤 했었다.  그당시엔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또는 거의 외우는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성우의 목소리가 재미있어서, 그 어린나이에도 책에서 글로 읽는것과는 다른 재미가 느껴져서 듣는 이야기를 좋아했었다.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하는 이야기는 이제 들을 수 없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향수가 가끔 그립다.

 

그런 생각에서 였는지 이야기로 세상을 희롱했다는 책읽어주는 남자의 이야기에 호감이 생겼다.  문득 조선시대면 양반들이 읽는 책을 그냥 읽어준다는건지 아님 세간의 이야기를 지어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인지 책을 읽기전에 나름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세상에는 사연 없는 인생은 없었다.  인생의 사연 속에는 너무도 기이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고단한 길 위에서, 주막에서, 그 인생들은 휘황찬란한 글속은 없어도 절절한 사연들을 맛나게도 풀어냈다.  쓰고 달고 시고 짠 인생의 맛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p54

김흑의 본명은 '운득' 미천한 반인의 신분으로 성균관 유생들의 심부름을 하며 이결 선생을 모셨었으나 패관소품체에 빠져있던 이결 선생이 왕의 노여움으로 쫓겨나고 운득은 상좌일행의 금강산 유람 수행을 나섰다가 죽을고비를 넘기게 된다.  살아난 그는 비천한 신분을 버리고 스스로 '김흑' 검은쇠, 검은놈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다.  세상을 떠돌며 이야기가 좋아서 이결 선생의 어깨넘어로 보던 그 패관서체가 좋았고 세상사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전하고 그것이 즐거웠던 그리하여 그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꿈꾸었던 이야기꾼 의 이야기. 

 

한갓 계절을 맞이할 때도 이전 계절과 이별해야만 가능할 테지만 사람을 만나고 떠나는 것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길 위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떠난 뒤에 남는 적적함가 쓸쓸함을 그는 견디기 힘들었다.  어이하여 만남은 슬픔과 고통을 통하여서만 가능한 것인가.  이별 없는 만남은 없는 것인가.  어쩌자고 죽음 앞에서만 비로소 생은 무시무시하게 또렷해지는가. -p131

김흑은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앞으로 만날 사람과 세상이 두려운것을 알았던 것이다.  정을 주었던 사람들이 등을 보이며 떠나는게 제일 두려운 것이라했다.  김흑은 알고있었다. 혀로는 사랑을 잡을 수도 없고, 죽음을 이길수도 없으며 그에겐 두려움을 벨 만한 무엇인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삶이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 아닐까?  '왕'인 정조는 사도세자였던 아버지와의 이별을 통해서 강해졌고 자신을 더욱 강하게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문체가 이념과 사회 생각을 반영한다는 생각에 엄하게 중신들을 자신을 다스렸던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허공에 의지해 그림자를 잡는 짓이고, 현실에 의지한 거울과도 같은 것이었다....중략...이야기가 무서운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감염력이 강하다는 데 있었다.  감염력은 허구에서 나온다는 것을 김흑은 알게 되었다.  삶밖의 삶, 현실 바깥의 세계, 사랑 너머의 사랑, 죽음 이후의 죽음은 바로 허구 그 자체지만, 사람들은 그 허구를 갈망하고 사랑했다.  그 허구에 대한 여인들의 다함없는 열망과 사랑이 있기에 그가 먹고살 수 있었다. -p199-200

김흑이 영의정 노옹의 딸 유리와 지독한 사랑에 빠지며 이야기는 더욱 긴장감을 더해간다.  노옹은 정조의 문체반정에 앞장서던 인물이었기에 책 읽어주는 '꾼'이었던 김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마음에 품게된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이야기 꾼으로 대가댁 마나님들께 책 읽어드리기를 시작하며 유리에게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한다.  병이있어 걷지 못했던 유리는 세상과 의 소통을 책으로 하고자 했고 그 소통 통로를 통해 유리에게 이야기 꾼으로서 다가가길 원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 김흑과 유리의 이야기, 그리고 김흑보다 더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정조의 이야기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어우려져 그 시대의 시대상과 인물들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다.  <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라는 간단한 주제만이 아니라 한 평범할 수도 있었던 남자의 일생과 왕의 일생이 어찌보면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기위한 욕망이 아니었을까..  오랫만에 책읽는 즐거움에 책장이 넘어가는 재미가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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