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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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호랑이 #가제본서평단

#네주시노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일단 그런 일이 시작되고 나면, 일단 사람이 그런 일을 행동으로 옮기고 나면, 그땐 너무 늦은 것이고,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든 중단시켜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절실하게 깨닫는다. 중단시키겠다고 혼자 다짐한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나면 다시 그 일이 닥친다. 막을 방도도 전혀 없고, 도와줄 사람도 하나 없다. 너무 나쁘게 보일 염려도 있고,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 사회는 너무 닫혀 있고, 너무 편협하다. 그래서 그 일은 계속되고, 가해자는 일을 또 벌이고, 다시 또다시 벌인다. 결국 피해자는 몇 해가 지나서야 드디어 벗어날 방도를 찾아낸다. _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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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악을 무시할 수 없다. 악은 여기저기 도처에 있다. 악은 모든 것의 색깔과 맛을 달라지게 만든다. 악을 무시하거나 잊은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가 악에서 도망치면 칠수록 악이 더 빨리 우리를 잡으러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가장자리에 버티며 살 수는 있다. 그 세계의 문턱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 그렇게 도전하라. _350p.

저자는 어릴 적 의붓아버지에게 몇 년간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했다.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닌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이야기는 범죄자와 피해자, 인간의 선/악, 문학작품, 동화와 전설 등 다양한 텍스트를 사유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범좌자들은 피해자를 볼 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음을 파악하고 대상을 선택하는 걸까? 평생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받은 피해자, 범죄자는 자신의 죗값을 치르면 면죄부를 받아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자신이 저지를 죄를 뉘우친다고 정말 달라질까? 왜? 왜?라는 질문이 너무 많이 생기고, 성폭력이라는 것의 처벌이 얼마나 약한지, 방비책은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자신의 의붓아버지와의 재판 과정에서 그는 순순히 자신이 한 일들을 인정했지만 그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하는 건 피했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파렴치함. 그럼에도 대외적으로는 호탕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 심지어 출소 후 저자 나이 또래의 여성과 가정을 꾸려 4명의 자식을 둔 가장이 되었다고 하니... (그 가정은 안녕할까?)

출력물 형태의 가제본 도서 <슬픈 호랑이>를 읽는 내내 연필을 손에 놓을 수 없었고 종이 구석구석에 얼마나 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끄적여두었는지, 읽는 내내 입을 앙다물고 읽었더니 책을 완독한 시점엔 턱관절이 뻐근할 정도... 자녀를 둔 이들이라면... 치유되지 않는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도 권하고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나한테 그런 짓을 벌이는 것이라 말했고, 그의 가장 소중한 소원은 내가 그 대가로 자기를 사랑해 주는 거라고 했다._29p.

우리의 문화에서, 터부로 되어 있는 것은 강간 그 자체가 아니다. 그 행위는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지 않는가. 터부로 되어 있는 것은 강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강간에 대해서 고찰하는 것, 강간을 분석하는 것이다._32p.

지옥에 갇혀 있으면,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무 얘기도 들려주지 않으며,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는다. 그저 지옥 속에 있기에도 너무 벅차기 때문이다._117p.

나의 이 책은 강간의 흔적이 평생 간다는 점을 또다시 보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책에 많은 독자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이 문학 속에 존재하는 방식은 내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다룬 주제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언제나 나를 사로잡던 강박 관념이었다. 게다가 그 주제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었고, 원한 것도, 생각해 낸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남에게 강요당한 일을 매개로 존재한다는 것, 그건 지독한 악몽이었다._135p.

괴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정상 상태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기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고, 자신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게 괴물이 아닐까? 자기들의 발기된 성기를 자기네 아이들의 몸속에 넣고,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들의 귀에 대고 세상에 있는 그 무엇보다 더 그들을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그자들이 바로 괴물이 아닐까? _207p.

아버지는 나만의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내게 주었고,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법과 고독을 즐기는 취향을 물려주었다.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서 문학에 대한 사랑이 생겨났다. 하지만 내 의붓아버지는 언어의 이중성과 침묵의 이중성을 알게 해주었다. 둘만의 그 내밀한 관계, 그것에 대한 혐오감. 내 글쓰기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_235p.

나를 강간한 자와 나는 같은 흙으로 빚어졌을까? 어떤 점에서 우리는 서로 비슷할까? 내가 그를 이해할 가능성이 정말 있을까? _245p.

말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많은 것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 말하고 나면, 당연히 가족을 잃는다 마을도 잃고, 어린 시절도,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잃는다. 그 대가로 무엇을 얻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진실을 얻기는 하지만,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_296p.

#열린책들 #이세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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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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