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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평점 :

#그저하루치의낙담 #도서협찬
#박선영
나는 늘 은둔과 도피의 서사에 매혹됐다. 지금은 줄거리도 잘 기억나지 않는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199)의 마지막 장면이 "도피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바침"이라는 문구로 끝날 때, 도피를 용인해주는 그 한 줄에 어린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렸던지. 도피가 왜 나쁘단 말인가. 감당할 수 없으면 도망쳐! 상처받지 않으려면 숨어! "이런 시대에 살아남아 꿈을 꿀 수 있는 길은 도피뿐이다." 다시 찾아본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문구다. 옳거니!
항상 도피하는 사람은 도피를 꿈꾸지 않는다. 그냥 도피 한다. 도망치고 싶지만 울면서 맞서는 사람들이 늘 도피를 열 망한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으면서도 나는 차마 그것을 결행 하지 못했다. 머물기의 괴로움. 이것이 내 삶의 핵심 주제였다._7p.
강렬한 제목과 책표지에 홀린듯 읽기 시작했지만, 책장을 쉬이 넘길수 없는 문장들이 많았다. 멈추어 생각하고, 지난시간과 지금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문장을 짚어나가기도 했다. 때로 필사하면서 나만의 문장으로, 글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저자의 <그저 하루치의 낙담>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속 스스로에게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과 무용하다 생각되었던 일들, 슬픔과 비참함등이 오늘의 내가 조금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고 앞으로 조금더 실패하고 낙담한다고 해도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조금은 여유있는 마음으로 지금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던 책이다.
누구나 지금의 생을,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지 않을까? 그렇기에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대한민국 유자녀 여성에게 일이란 누군가는 반드시 상처받는 삼각게임이다. 스스로 2급 트랙으로 후퇴하며 커리어를 만신창이로 만든 엄마가 상처받거나, 엄마 없이 외롭게 시 간을 보내며 돌봄공백에 시달리는 아이가 상처받거나, 언제가 생의 최후일지 모르는 노년의 부모가 양육이라는 감옥에 갇혀 무너져내리거나, 셋 중 하나 혹은 둘이다. 희생에 가까운 외부 조력 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도 행복하고 엄마도 승승장구 하는 그림은 대체로 가능하지가 않다. 슬프게도 어딘가에는 상처받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_73p.
한국에서 슬픔의 회피는 심각한 사회병리의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슬픔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다. 감정의 탈진을 버거워하고, 내면의 고충을 은폐한다. 누군가 자신의 슬픔을 약점으로 악용할까봐, 기쁨이 찾아와 자신을 얕볼까봐 공포에 잔뜩 질려 있다. 박복한 슬픔파로 분류될까봐 남의 슬 품을 외면하려 애쓰고, 영원한 기쁨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열정적으로 거짓 시늉을 한다. SNS에 전시하기 위한 삶의 저 부박한 행복이란 오로지 불안과 두려움의 동력으로만 가능하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기쁨을 좇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다. 생의 비의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기쁠 수 없다. 당신의 기 쁨은 무지에 기반해 있다. 나는 당신이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 았으면 좋겠다. 슬픔을 더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슬픔에 대해 도란도란 더 많이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_100~101p.
영어로 된 어떤 글을 읽다가 moral courage라는 표현과 마주쳤다. 도덕적 용기. 두 단어 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용기는 그저 용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용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는 거였다. 물리적 위험과 대범하게 맞닥뜨리는 외적 용기만이 어디 용기겠는가. 도무지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지적 용기도 있을 것이고, 아름다움을 위해 인습과 관행을 격파하는 미적 용기도 있다. 그저 옳은 일이니까,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은 채 눈 질끈 감고 분연히 일어서는 도덕적 용기는 그중에서도 언제나 나를 가장 강렬하 게 매료한다. 자신의 오류를 정직하게 직시하고 끊임없이 수정 하는 것도 용기요,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도 용기다. _135p.
우리는 타인의 행과 불행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 걱정과 배려 속의 호기심, 축하와 공감 안의 호기심, 어쨌든 거기엔 호기심이 있다. 알려지고 싶지 않을 때 굳이 알아채는 쓸데없 이 발달한 너의 촉수. 아니, 나의 촉수. 행이야 고맙다 하고 지나치면 그만이지만, 나의 불행에 개입하는 너, 아니 너의 불행 에 개입하는 나의 오지랖은 참말로 못나 빠지지 않았는가. 남의 사정을 염탐하느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호기심만 왕성한 이 징글징글한 사회에서 이제 나는 '돕는 나', '걱정하는 나'라는 비대한 자아를 뒤로 물리고, 조용히 응시하는, 절도 있게 기다리는 사려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_219-2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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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