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매 #도서협찬

#황석영

나무는 씨앗이었을 적에 개똥지빠귀의 뱃속에 있다가 땅속에 묻혀, 그것의 몸속에서 싹이 트고 움이 솟아올라 풀 같은 묘목으로 시작한 기억이 그해에 자라난만큼 나무껍질의 한 층으로 나무의 제일 안쪽에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기억들은 각각 다른 층을 형성했다. 팽나무의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쌓여가는 겹겹의 층이었다. 그 매번의 겨울 층마다 개똥지빠귀의 기억이 들어 있었다. _46~47p.

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이 녹아들어 기름진 땅속으로 뿌리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나갔고, 어린 팽나무 싹은 여름이 되자 묘목이 되어 몇개의 가냘픈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와 바람에 팔랑대고 있었다. 바람과 햇빛과 물안개와 가랑비와 폭풍까지 견디며 버티어낸 어린 팽나무는 다시 겨울이 오자 추위에 죽어버린 듯, 삭풍 속에 꽂혀 있는 메마른 작대기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이 팽나무는 스스로 죽음 같은 겨울의 정지와 봄마다 찾아오는 새 생명의 활기를 깨닫게 되었다. _31p.

나무는 나이테 속에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남겼다. 그 겹겹의 섬유질 속에 계절의 재활과 성장과 갈무리와 휴지의 반복이 새겨졌다. 이를테면 지상에서 계속되는 이 반복은 길건 짧건 시작이나 끝이 아니라 오래오래, 또다시 오랫동안 되풀이 되는 변화에 지나지 않았다. _37p.

몽각은 그 풀이 하나의 나무 모양을 하고 제 키만큼 자랐을 때, 잎을 따서 높다란 고목 팽나무의 큰 가지 위에 올려주며 중얼거렸다. 할매, 이것이 당신 자식이라오. 내가 키웠어요. 몽각은 이 빈터의 오랜 주인이었던 고목에게 자기도 한식구가 되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_77~78p.

몽각은 자기 몸이 곧 무너지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한 차례 통증이 지나간 뒤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팽나무에게로 갔다.

나보다 먼저 있고 나중에 없어질 할매여, 이제 내가 먼저 없어지네.

그는 한때 그가 부지런히 잡아서 먹고 몸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들에게 자신을 보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비틀거리며 갯벌로 나온 길이었다. _83p.

외갓집으로 짐작할 만한 길에 이르자 그는 문득 저쪽에 무성한 잎이 달린 가지를 벌린 높은 키의 나무를 발견했다. 동수는 그 나무를 금방 알아차렸다. 할매나무다. 집과 담벼락 너머 동네에서 제일 안쪽에 있어서 몰라보았던 팽나무였다. 그냥 아무것도 걸리적거리지 않는 폐허를 지나 나무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울퉁불퉁한 옹이와 상처투성이의 나무에 다가서서 우람한 몸통을 두손으로 쓸어보았다. _214p.

#창비 #소설추천

한마리의 새로 시작된 여정이 육백년 팽나무에 이르기까지,

생명과 역사에 대한 압도적인 서사는

천천히 필사하며 음미하고 싶어지는 문장으로 가득했던

책이었다. 올 해는 이 책을 통필사해볼까...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