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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그녀를지키다 #도서협찬
#장바티스트앙드레아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사제는 그 말에 담긴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놀라울 정도로 잘 지내고 있죠. 그녀를 지켜볼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야. _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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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와 처음 만난 지 11년이 지나서야, 나는 비올라와 함께 있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은밀했던 11년. 살을 저미듯 아렸고 뒤뚱거렸던 우리의 우정, 야행성의 우정이 마침내 햇볕에 의해 복권되고 그 위로 처음으로 햇살이 환히 부서졌다. _369p.
이탈리아의 사크라 수도원, 천 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 수도원에 하나의 비밀이 더 추가될 예정이다. 바티칸의 엄명으로 지하에 감금된 피에타 석상. 겹겹의 감금 장치로 접근이 불가능하며 이 공간을 드나들 열쇠를 갖고 있는 건 수도원장뿐이다. 이 석상을 조각한 석공 미모의 탄생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각가였던 아버지가 열두 살 나이에 사망하고, 동생을 임신 중이었던 엄마는 미모를 잠시 한 석수장이에게 맡기게 된다. 그와 함께 이탈리아의 명문가 오르시니 가문에 일하러 갔다가 평생의 운명이 될 소녀 비올라를 만나게 된다. 집안의 누구보다 똑똑하고 하늘을 날아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이루려고 시도했지만 사회적인 제약에 스스로 갇혔던 비올라, 왜소증이라는 장애에 갇혀있던 미모 이 둘은 서로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힘이 되어주기로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평화로운 피에트라달바에도 피시즘의 득세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한편 미모는 이 시기에 자신의 천재적은 재능을 꽃피우게 되는데...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저자의 실력은 소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장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비올라와 미모의 관계, 사회적, 개인적인 이들의 위치, 비밀을 숨긴 피에타의 유폐 등 나를 '나'로 살 수 없게 하는 닫힌 세상에서 인간이 삶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단 한 가지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즈음 순식간에 등장한 충격적인 반전, 먹먹함은 한 편의 인생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한 번쯤 읽어보시길 추천, 또 추천한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상하다. 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혼자였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중략) 하지만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살아오는 내내 바뀌었으며 나중에는 오페라 가수들과 축구 선구들까지도 포함하게 될 나만의 우상들을 모신 만신전에 기도를 올리면서 저녁마다 그 사실을 확인했다. 어쩌면 내가 젊었고, 나의 하루하루가 아름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낮의 아름다움이 밤의 예지에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헤아린다. _42p.
비올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관습과 계급의 장벽이 파놓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을 한 걸음에 건너뛰면서. 비올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 누구도 말한 적 없는 위업이자 말 없는 혁명. 비올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 찰나에 나는 조각가가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러한 변화를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낮은 초목들과 올빼미가 공모하는 가운데 우리의 손바닥이 합쳐지자 뭔가 조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본능적 깨달음이 생겼다. _103~104p.
알베르토는 나를 증오했고 나는 그를 싫어했지만, 우리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_169p.
나는 네게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위로도 아래로도, 큰 걸로도 작은 걸로도. 모든 경계는 만들어 낸 거야. 그 점을 이해한 사람들은 그걸, 그런 경계를 만들어 낸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하고, 나아가 그걸 믿는 사람들은 더욱더 불편하게 만들기 마련이야. 그러니까 거의 모두가 불편해진다고 할 수 있어. 마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지 말아. 내 가족들 조차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알고. 난 상관 안 해. 모두가 네게 반대하면 네가 올바른 길에 들어선 것임을 알게 될 거야.
_199~200p.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만약 전부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겠지. 미모, 네가 단 한 번도 틀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넌 신인 거야. 네게 품은 그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신을 낳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_422p.
「떠나자, 비올라. 난 이런 폭력에 신물이 나.」
「떠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최악의 폭력, 그건 관습이지. 나 같은 여자, 똑똑한 여자, 난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 해, 그런 여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습. 그런 말을 하도 듣다 보니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뭔가 비밀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어. 그 유일한 비밀이라는 건 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더라. 내 오빠들, 그리고 감발레네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이 보호하려고 애쓰는 건 바로 그거야.」_5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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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