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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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여름에게 #도서협찬

#창비

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줄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 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물방울이 되어버린 할머니나 오이지라면 목구멍이 아리도록 가슴이 막혀오는 나나 그냥 우리는, 다 사랑이었어요. 할머니와 나의 사랑이 이렇게 뜨겁고 애달프다고. 그 지독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나라는 사실, 더없이 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 이야기에 온통 상처만 남아 있지는 않다는 거예요._18p.

하나의 단어는 그보다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불러옵니다. 하나의 세계를 열어주고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의 언어를 익히고, 단어의 뜻과 쓰임을 알고, 그것을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온갖 경험에서 건져 올린 나의 기억을 세계 속에 채워 넣으며 다채롭고 풍요롭게 나를 꾸려가는 것이겠죠. _24p.

누구나 오직 자신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몸으로, 나의 언어로, 나의 세계로, 나의 무게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그럴 때면 ‘없음’의 자리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없음에서 주워 올린 마음. 오직 부재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었던 마음. 없어서 구할 수 있었던 마음. 이런 건 무어라 이름 붙여주어야 할까요. 하필 나와 비슷한 돌멩이를 쥐고, 봄이 가까운 깊은 밤 잠들지 못하는 나를 닮은 사람을 떠올릴 때면 나는 더 솔직해지고 싶어지는 거예요. 더 용기 내고 싶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나의 단어를 찾아가면서요. _29~30p.

슬픔을 슬픔으로 바라보든 시간이 지나가면,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오는 지도 모르겠다. 그 무언가 때문에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두고 싶다. 언제든 슬플 요량으로 이불 끝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_63p.

망가질까 봐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 망가지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걸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무엇을 망가뜨리고, 무엇을 수선하고, 무엇을 다시 세우고, 무엇을 멀리 치워두어야 하는지 이제 겨우 알 것 같기 때문이다. _75p.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한 사람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서로의 눈을 맞추고 살갗을 스치지 않고 소리 없이 서로를 만지는 일. 내가 잊고 있었던 이야기마저 나보다 먼저 와 들어주는 일. 나는 그런 식으로 몇몇의 작가를 깊이 사랑했다. 내가 가장 어두울 때 나를 만지는 눈. 나만 준비되었다면 언제든 나를 안아주는 눈. _104~105p.

나는 혼자가 두렵다. 언젠가는 곁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잃게 될 거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렵다. 너무 많은 비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같이 맞을 수도 없고 같이 피할 수도 없는 비를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 모르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이다. _136p.

지금은 없지만 '있었던' 순간만으로도 젖은 것은 것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젖지 않았다면 참 좋았겠지만, 두 발에 차오르던 빗물의 감각을 꿈에서도 잊을 수 없지만, 신기한 일이에요. 나를 붙들어 매는 순간들은 여전히 내 곁에서 숨 쉬고 있으니까요. _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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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덤하지만 애틋하고, 뭉근하게 차오르는 슬픔이 있지만 들여다보면 사랑이 가득하다. 올 여름, 이 한 권의 에세이만 끼고 있어도 뜨거운 여름을 무탈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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