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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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하나 나까지 안 되면? 그땐 어떡할 건데?"

지혜로운 보살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무섭게 추궁했다. 이유 모를 억울함과 서러움에 입이 벌어졌지만 결국 벙긋도 못 하고 다물어야 했다.

만에 하나 너도 날 못 도와주면, 그땐 어떡하느냐고?

.... 진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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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속으로 욕을 해봐도 한번 터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위대하다고들 하지 않았나? 하지만 임신에서부터 출산, 육아까지 14개월 만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멍청이가 되어버렸다. (중략)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꺼진 화면을 터치하자 심해 같던 방구석이 다시 희미하게 커졌다. 음영 없이 납작한 앱은 버튼이라기보다는 스티커처럼 보였다. 화면의 마지막 페이지, 가장 구석에 처박힌 회색 박스에 외로이 들러붙은 그 스티커를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눈물로 어른거리는 시야에 오렌지색 유모차 아이콘을 폭 감싸 안은 월계수 가지 두 개가 둥둥 떠다녔다.

흰 바탕에 오렌지색과 녹색의 대비가 산뜻하긴 하다. 하지만 이름이 '황새영아송영'인데 대체 '황새'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묘하게 촌스러운 네이밍 센스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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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그만 인간에게도 혼자서만 겪어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걸까요? 불쾌하거나 아픈 곳이 없는데도 울음을 그칠 수 없다면, 그 원인은 아기의 마음속에 있을 테죠. 아니면 울고 있는 자신도 왜 우는지 몰라 무서워 우는 것일까요?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는 인공지능을 테마로 한 여섯 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그중 대표작인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다음날 복직 후 첫 출근을 앞두고, 아이의 보육원에 전염병으로 인해 12주간 어린이집 휴원한다는 사실을 통보받게 된다. 긴급 보육을 맡겨도 되겠지만, 왠지 전염병이 확진된 장소에 아이를 보내고 싶진 않고 아이를 부탁할 곳은 마땅치 않다. 당장 친정 부모님께 이안이를 맡기러 가려고 하니 그조차도 막막해 쏟아지는 눈물...

그때 친한 동생이 설치해 준 앱이 떠올랐다. (황새영아송영) KTX 편도 요금의 몇 배를 지불하고 남해로 직행하는 우주선을 탑승한 기분, 쾌적하고 안락했으며 무엇보다 안정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가까이 도와줄 수 있는 이가 없을 때 찾게 되는 시스템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육아, 간병, 돌보미, 케어, 등등 이는 때론 사람이, 로봇이, AI가 일상에 이렇게나 스며들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기우였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고 그로 인해 삶은 조금 윤택해진다.

김초엽소설가의 추천사를 다시 읽어보게 된다. "익숙한 현실과 낯선 미래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맞붙어있어 이상하고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짧은 단편만으로도 관심 가는 작가로, 단편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각각 독창적이고도 매력적이며 독립적인 힘 있는 소설. 일상에 닿아있는 SF 소설이 이렇게나 새롭고도 재미있다니!! 책의 다른 소설들도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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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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