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은희경 지음 / 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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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들 앞에서 생각한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서 내가 되었구나. 누구나 매일 그럴 것이다. 물건들의 시간과 함께하며. _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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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필요한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려고 애쓰지 말길 바란다. 어차피 설득은 어렵다. 상대는 실용성과 효율을 근거로 묻는 것이지만, 나는 매우 사적으로 기분상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쓸모없어 보이는 사소한 물건을 사는 데에는 미묘한 사치의 감각이 있다. _214p.

책의 제목만으로도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인데!'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책이 있다. 은희경 작가님의 에세이 <또 못 버린 물건들>을 보고 나와 같은 생각한 이들이 많지 않았을까? 이사를 하고 2년이 다 되어가지만 박스째로 있는 짐들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그 와중에도 책은 계속 쌓이고 있어 이젠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되어버렸다. 가끔 튀어나오는 물건들,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나? 싶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물건, 쓰진 않지만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한 물건, 물건 자체만으로도 그 시절이, 시간이 바로 떠오르는 물건 등등... 버리지 못해 끌어안고 살아가는 작가의 글은 귀엽고도 재치가 넘친다. 하루 한두 페이지씩, 또는 페이지를 멈추지 못해서 읽어가다 보니 독파 챌린지 기간보다 조금 일찍 완독하게 된 에세이를 통해 나의 물건들도 이렇게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를 품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며 읽었던 설레는 글이었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절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작가의 글은 더욱 기껍고 반갑지 않았을까? 은희경 작가가 직접 찍은 물건의 사진과 스물네 편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의 이야기도 써보고 싶어질 것이다. (아마도!!!)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_44p.

요즘도 뭔가를 쓰다가 이따금 연필을 내려놓고 가운뎃손가락 마디의 옹이를 한참 내려다보곤 한다.

(중략) 학창 시절 언제나 오른쪽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툭 튀어나온 옹이가 있었고 필기를 하다 보면 그곳이 눌려서 벌겋게 되곤 했다. 당연히 글 쓰는 속도도 느렸다. 좀 느리게 쓰면 어때. 그런데 문제는,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그 문장을 지워버린 뒤 다음다음 문장을 이어가는 식이었다. _60~61p.

어떤 물건과 만나게 된 사연은 그 물건에 일종의 캐릭터를 부여한다. (중략) 나의 물건이지만 모든 사물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다 똑같지는 않다.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에 아끼는 물건일수록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더 크게 터져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마음을 일일이 의식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대하는 것뿐, 머리와 가슴속에는 사물 각자의 캐릭터가 입력되어 있어 사물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95~96p.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 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_147p

물건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데에는 거기 깃든 나의 시간도 한몫을 차지한다. 물건에는 그것을 살 때의 나, 그것을 쓸 때의 나, 그리고 그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담겨 있으며 나는 그 시간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다. _154p.

내가 글로 얘기한 것을 한 장의 사진에 어떻게 담을까 구상하는 일은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처음 해본 일들이고 동시에 내가 결코 잘하지 못하는 일들이지만 배움의 태도가 빚어낸 민폐라 혜량하시고 가능하다면 한쪽 눈꺼풀을 덮은 채 한쪽 눈으로만 보아주시기를. 이런 식으로 나는 또 변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모두 변하고 있다. 어제와는 조금쯤 다른 사람이고, 그리고 그 다름들이 모여 나의 인생이 되는 것이겠지. _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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