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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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베르타이슬라

#하비에르마리아스 #스페인소설

학기가 진행되는 8~9주는 상대방을 기다려야 하는, 다시 말해 잠시 괄호 안에 넣어두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괄호 안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은 물론 이별을 의미하는 시간이었지만, 다시 결합하면 금세 정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진 거리는 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 톰과 베르타는 이런 것이 두 사람이 함께 보낼 한평생의 대부분을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징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함께 있으면서도 눈앞에는 별로 머물지 않을 것이며,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 등을 돌리고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_3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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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시간이 전혀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떤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각자만의 내밀한 슬픔을 안고 있다. _739p.

국제 임팩 더블린 문학상, 로물로 가예고스 문학상 외에 스페인 출신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쓴 스페인 현대문학의 거장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베르타 이슬라>는 2018년 스페인 비평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베르타와 네빈슨은 어린 나이에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소녀 베르타는 자기가 선택한 사람과 이미 결혼을 한 것처럼 상상에 빠져있기도 했다. 언어감각이 뛰어나 영어, 스페인어 외에 제3, 제4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기도 해 대학에 진학해서도 눈에 띄는 인재로 휠러교수로부터 비밀 정보부의 일을 제안하게 된다. 아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토마스는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비밀단체의 도움을 받게 되고... 마드리드에서 베르타와 결혼하게 된다. 자신의 직업, 하는 일을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는 토마스는 베르타와의 결혼 생활에 충실할 수 없었고 베르타는 점점 변해가는 토마스, 그들의 선택을 받았지만 자신이 선택하지는 못했다고 말하는 토마스.

아들 기예르모를 낳고, 딸 엘리사를 낳아 키우면서도 그들의 가정에 토마스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어느 날 공항에서 출장 다녀오겠다던 남편은 12년이 흐른 뒤에야 베르타 앞에 나타나게 된다. 나라에서도 토마스의 죽음을 인정했지만 베르타는 아이들과 함께 혼인상태를 유지하며 시부모 댁과 교류하며 살아가는데, 젊은 시절은 흘러갔고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는 아이들은 성장했으며 긴 세월을 건너 가족 앞에 나타난 토마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떠난 자와 기다리는 자, 섬세한 감정묘사와 흥미진진한 음모는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께감 있는 분량임에도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남편의 삶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려는 베르타를 통해, 이도 저도 아닌 경계를 머물다 결국 베르타에게 돌아온 토마스의 삶에 빠져들 게 될 것이다. 진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것이다. (추천!!!)

실수리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실수를 해봐야 한다. 상처를 받지 않으면,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실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법이다. 그러니 내 입장 에선 토마스와 결합하기도 전에 미리 모든 결과를 수용하고 남남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거리를 둔 채 살아가 는 부부가 많은데도 이혼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스페인과 같은 나라에서 어느 정도는 최종적인 결론일 수밖에 없었다. 매듭을 풀려면 때로는 먼저 매듭을 강하게 묶는 것이 필요할 수 도 있으니까. 너무 과중해서 불가능하기까지 한 과제를 수행하기엔 우리가 너무 부족했던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고뇌와 몸부림, 갈등과 드라마 같은 고난을 겪으며 사는 것 외에는 달리 인생을 살아갈 방법을 갖고 있지 않기에 그런 과제를 평생 안고 지낸다. 얽히고설킨 것을 풀기 위해 또 얽히고설키는 것이 다. 이런 식으로 주어진 모든 시간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이다._195p.

다른 삶에서, 또 다른 삶들에서, 바람 불듯 지나간 너무나 생생하고 밀도 있는 삶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순간순간 지나온 조금 전의 삶은 이미 뒤로 지나갔기에 다시는 뒤집을 수 엇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았다. 그에게 유일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삶은, 반복할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은 마드리드에서 내가 제공한 삶이었다. _352p.

나에겐 토마스가 떠난 지, 4월 4일 바라하스공항에서 잠시 이별을 고한 지 딱 10년째 되는 해였다. 그와의 이별은 멀면서도 가까운 것 같았고,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졌다. 가깝게 느껴질 때는 마치 엊그제인 것 같았다. 지난 9월에 나도 40살이 되었는데, 잘 믿기지 않았다. 나이보다 늙은 것 같기도 했고, 젊은 것 같기도 했다. (···) 인생은 완전히 시작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끝나지도 않았다. 나는 독신이자 과부였고, 동시에 기혼자였다. 정지되어 버린 삶을, 중단된 삶을, 아니 이상하게 뒤로 미뤄진 삶을 살고 있었다.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진짜 흐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_549~550p.

한동안 남편이 진짜 내 남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것이 필요할 수도 있었고, 즐길 수도 있었다. 가끔은 확실히 믿음이 가기도 했지만, 가끔은 믿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_7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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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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