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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평점 :

끗의 자리에서, 끗과 함께, 한 끗 차이로도 완전히 뒤집히는 세계의 비밀을 예민하게 목격하는 자로 살아가고 싶다. 여기 이곳, 단어들이 사방에 놓여 있는 나의 작은 놀이터에서. _260p.
2년 전 여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으로 처음 알게 된 안희연 시인. 시인이 이야기하는 단어들은 어떻게 풀어갈까?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를 위한 선물로 구입했던 책을, 1월을 시작하며 매일 밤 조금씩 넘겨 보았다. 단어의 사유들과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 다정한 태도가 단어에서 시작해 오늘의 삶 한복판에 이르게 한다. 단어와 일상을 살피며 생생한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글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놓칠세라 야무지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매일 같은 일상, 그 안에 어떤 단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지 부러 찾아보지 않아서였을까? 매일같이 짧은 기록을 남기는 일기에도, 쓸만한 일상이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단어장과 에세이들을 소리 내어 조용히 읽어보기도 하고, 마음이 닿는 단어들과 문장들은 독서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면서 '내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이다. 궁금하쥬? 궁금하면 읽어보아요. ^^
버티어 대항하는 힘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어.
정말 그렇다. 지금이 있기에 그때는 더욱 환하거나 어두워지고, 저곳이 있기에 이곳은 특별하거나 사소해진다. 한 방향으로만 뻗어가는 힘이나 목소리는 금세 상하거나 차게 식기 마련이다. 싸움도 둘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혼자 하는 싸움이더라도 사실은 혼자 안의 둘이 싸우는 것처럼.
그러니까 소망은 크든 작든 원래가 까다로운 것이 맞다. _17p.
이따금 나의 생활 반경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 때 먼 곳의 여름을 떠올린다. 나라는 존재가 운명 혹은 시간의 몰드(거푸집, 주형, 틀) 안에서 서서히 구워지는 반죽 같을 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유연함, 부드러움, 생기는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간다는 생각에 두려울 때. 먼 곳의 여름을 떠올리면 나의 몰드가 그만큼 넓어지고 환해지는 기분이 든다. _50p.
삶이란 흘러가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손에 잡히기도 한단다. _83p.
삶이 형벌 같다는 마음. 그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세상이 내게 감추고 있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흐릿해진다.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살도록 프로그래밍 된 게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딱 한 번, 가장 찬란한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깨닫기도 전에 끝나 있다. (지금인가? 설마.) _109~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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