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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도서협찬 #패싱
클레어는 인종이나 그것이 어찌 되는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같은 인종에 속한 어느 누구에게도 건강한 아니 최소한 진실한 애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 클레어 켄드리는 자기 인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거기 속할 뿐이었다._102~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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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은 그저 단어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행복, 사랑, 또는 그녀가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본능적인 기쁨 같은 것들을 희생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변치 않기를 바라고 믿는 것은 다른 기쁨과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아이린이 한참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이해할 해 봐도 알 수도 결론을 내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오래 찾아 헤맸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에게는 안정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람직한 가치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도, 또는 그것들을 다 준다 해도 그녀는 안정감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_216p.
패싱(passing) 백인 행세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넬라 라슨은 검은 피부를 타고난 인종 차별에 일찍 눈뜨게 되었고 하얀 피부를 가진 흑인들이 백인 행세를 하는 이른바 '패싱'에 대한 두 여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백인피부를 지닌 흑인, 패싱은 아니지만 그 경계에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며 살아가는 아이린은 성인이 되어 호텔 카페에서 클레어를 만나게 된다. 가난한 고아였던 클레어는 패싱에 성공한 듯한 백인의 삶을 사는듯했는데, 아이린과의 만남 이후, 부담스러울 만큼 집착해온다. 그녀와의 만남, 흑인들의 사교모임에 참여하고 싶어하고 너무 잦은 연락을 해오는 그런 클레어가 아이린은 불편하다. 철저히 패싱이 되어 자신의 과거와 핏줄을 감추고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 위태로워 보인다고 느낀 건, 클레어의 남편을 만나고 더욱 선명해졌는데....
할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경계에 섰다면, 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책을 다 읽고 책표지의 질문을 다시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던 질문은 만약 나였다면? 경계를 넘는 사람이었을까? 경계에 서는 사람이었을까? 아이린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남편과 아이들을 통제하며 살아가는, 그리하여 이것이 행복이고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증명하듯 살아가는 아이린과 그녀의 삶을 조금씩 침범해오는 클레어를 이야기한다. 클레어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을까? 흑인을 극혐하는 남편의 눈을 피해 자꾸만 아이린의 삶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클레어의 외로움은 무엇이었을까? 패싱의 경계를 넘는 일을 왜 하지 않는지 이야기하는 초반과 다르게 클레어의 유난스러운 집착이 절절한 외로움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런 클레어를 경계하는 아이린의 신경도 극도로 날카로워지며 후반으로 갈수록 첨예해지고, 남편과 클레어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되지 않는 삶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 백인 피부를 지닌 흑인 여성들의 위태로운 '정체성 넘나들기'는 2021년 선댄스 영화제 화제작이기도 한 『패싱』의 영상이 궁금해지는 원작으로 인종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들의 주체적 행보는 100여 년이 지났지만 섬세하고 유혹적인 소설이다.
“… 왜냐하면 외로워, 너무 외로워서….. 다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참을 수가 없어. 어떤 것을 이렇게까지 원했던 적은 없어. 난 인생에서 많은 것을 원했어…. 이 창백한 나의 삶에서 그 다른 삶, 한때 그것으로부터 기꺼이 자유로워지겠다고 생각했던 그 삶의 환한 그림을 내가 한 번도 떨쳐 버린 적이 없었다는 것을 너는 모를 거야…. 그것은 통증과도 같아. 절대로 멈추지 않는…” _18~19p.
우리는 패싱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용서하잖아요. 경멸하면서 동시에 감탄하고요. 묘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패싱을 피하지만 그걸 보호하기도 하죠. _110p.
그녀가 가족들을 위해 그토록 훌륭하게 생활을 가꾸어 왔고 또 그것을 유지하려고 그렇게 애써 왔건만 이 모든 생활이 안전하게,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느낌은 한순간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 이상하고 기막힌, 브라질로 떠나버리겠다는 브라이언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지만 않았을 뿐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그녀를 두렵게 하고, 그래, 분노하게 하는가! _112~1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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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