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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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고군분투가 있다.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더라도 역시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에 어떤 권리라는 것이 있다, 고 김금희의 소설은 말하는듯하다. 어찌 된 일인지 더 힘들어져버린 이 고군분투를 김금희의 소설은 계속해서 지켜볼 것이다. 지금, 그 지켜봄에서 발견되고 발생할 것들보다 더 절실한 '사건'도 없을 듯싶다. _ #황정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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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는 크게 관심도 없는 사랑의 면면을 왜 이 여름 이렇게 고심해야 하나 생각했다. 리애씨도 선생님도 모두 나보다는 근 십수 년은 위인 여자들, 그러니까 더 늙고 경험 있는 연륜 있고 스펙 있는 여자들인데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다 여전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신화에서 인간이 판도라 상자를 열었을 때 다 날아가고 남은 건 희망이 아니라 의문이 아니었을까.

_206p. #기괴의탄생

 

여름의 김금희, 책을 완독하고 나서야 책띠지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첫 장을 펼치면 '이 여름 우리가 가장 무르고 환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저자의 사인 문구를 먼저 만나게 된다. 매번 책장을 새로 펼치며 가장 먼저 읽고 책 읽기를 시작하게 된다. 7편의 단편을 모은 김금희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책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 크리스마스에는 / 마지막 이기성 /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 기괴의 탄생 / 깊이와 기울기 / 초아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는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사건' 속에서 그럼에도 '나'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과 감상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는 글이 아닐까? 최근 소설가들의 단편 모음집을 한 권의 소설로 읽게 되는 빈도가 높아졌는데, 예전에 비해 단편을 읽는데 부담감이 줄어서 인지, 한 작가의 단편을 읽다 보면 그 작가의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게 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이 작가는 쉽게 다가오진 않지만 조금 더 알고 싶은 작가가 있다. 내게 김금희라는 작가의 글은 가벼이 읽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미세한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환한 문장들, 김금희라는 믿음직한 세계' 라는 문장처럼 조금 더 알고 싶게하는 소설집이었다.

 

햇볕이 부드럽게 목덜미를 쥐어 따뜻해졌는데, 가능하면 그것이 나의 무언가를 녹여주었으면 싶었다. 겨우 스물하나였던 나는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내면의 균열이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예감은 하고 있었다. 상해야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상하고, 다쳤다면 그 다쳐버린 상태를 내보일 수 있는 무른 마음을 갖는 것.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마음의 형질을 헤아릴 수가 없었고 너울처럼 나를 덮는 나쁜 상태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견고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_ 13~14p. #우리가가능했던여름

 

환자가 집안에 있는 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의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음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수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면 느낀 것이었다. _83p. #크리스마스에는

 

그가 유키코에게서 마음이 정확히 왜, 어떻게 떠났는지는 끝내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눈 오는 풍경처럼 온통 환하고 완벽한, 압도적인 충일함에서 시작하지만 일단 지워지기 시작하면 또 눈이 녹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얼룩이 연쇄되며 진행되니까. _108p. #마지막이기성

 

"그래, 넌 어디서 왔니?"

기오성이 그렇게 말하며 물수제비를 떴고 조약돌은 얼마 가지 않아 잠겨버렸다.

"페퍼로니에서 왔어."

강선이 피자 박스를 구겨 접으며 말했다. 그러자 우리는 웃었는데, 강선이 웃을 일이 아니라 자기는 한국에 돌아와 애들이 자꾸 그렇게 물어서 그런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페퍼로니 피자는 강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_151p. #우리는페퍼로니에서왔어

 

#우리는페퍼로니에서왔어 #김금희 #소설 #창비 #김금희소설집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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