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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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쓴것 #0판1쇄 #미리뷰어

 

내가 지금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그저 스토커나 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것. 특정한 사고나 사건이 아니라 나를 에워싼 상황 같은 것. 이를테면 젊은 여자가 스스로를 오롯이 책임지며 혼자 사는 일. _139~1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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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아빠와 둘이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한다. 지금처럼 편할 수 있었을까. 사는 일에 별다른 에너지를 쓰지 않으며, 가사 노동에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으며, 인정과 이해를 구걸하지 않으며, 물 흐르듯 나이 먹을 수 있었을까. _232p.

 

소녀, 회사원, 딸, 엄마, 며느리, 시어머니 살아가며 다양하게 갖게 되는 가족과 사회 구성원에서의 이름들. 그 이름들로 살아가는 것은 쉽거나 녹록지 않다. <매화나무 아래>, <오기>, <가출>, <미스 김은 알고 있다>, <현남 오빠에게>, <오로라의 밤>, <여자아이는 자라서>, <첫사랑 2020> 8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의 삶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작가는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 '다르게' 이야기하고, 잊었던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다시' 이야기하는 여성 서사에 집중한다. _ #김미현 교수

 

이미 읽었던 단편도 있지만, 한 권으로 책으로 엮어 새롭게 읽는 글은, 조남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정 연령대가 아닌 다양한 연령대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풀어낸 단편들은 하나하나의 이야기마다 힘을 갖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여성의 시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단편들 중 인상 깊었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던 <가출> , <첫사랑 2020>의 초등학생 소녀는 코로나로 인해 부모님의 삶과 학교, 남자친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그리며 생각지 못했던 마지막 모습이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와 씁쓸하기도 했다. 다시 읽어도 소름 끼치는 가스라이팅의 흔적 <현남 오빠에게>의 마지막 몇 줄은 다시 읽어도 사이다!, <매화나무 아래> <오로라의 밤> 은 앞으로 맞이하게 될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기도 했다. 그저 살아갈 것인가? 세월을 막을 수 없든 맞이하게 될 나이 듦과 살아가야 할 삶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서로의 연대를 찾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머지않은 우리들의 이야기 일 것이다. 20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터 2020년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진 여름까지 10년 동안 집필한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된 조남주 소설집 「우리가 쓴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내가 살아온 길고 복잡한 시간과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여러 역할과 글을 쓰는 사람이자 생활인으로서의 다양한 고민과 각각의 고민에서 시작된 모두 다른 글들이 간단하게 요약되어 함부로 호명되고 있었다. _75p.

 

"나 사실은 잘 지낸다. 어쨌든 회사도 다녀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살아야 하니까. 밥도 어지간히 넘어가고 잠도 잘 자는 날이 더 많아. 산다는 게 그렇더라." _108p.

 

수제비 냄비를 가운데 두고 세 여자가 식탁에 앉았을 때 지혜가 깜짝 선물이라는 듯 말했다.

"엄마, 나 임신했어!"

기쁘지 않았다. 갑자기 소매치기라도 당한 것처럼 넋이 나갔다. 아이고 잘했다, 장하다,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 지혜의 뿌듯한 얼굴이 낯설었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득달같이 엄마에게 달려올 만큼 자랑스러웠을까. 누가 지혜에게 이런 감정과 태도를 가르쳤을까. 딸이 약한 몸으로 임신과 출산을 겪어 낼 일이 걱정인지, 맞벌이인 지혜네 부부가 아이를 키울 일이 걱정인지, 내가 벌써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_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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