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평점 :

돼지가 사는 동안 행복했다고 하더라도 돼지를 잡아먹는 것은 괜찮은 걸까. 동물의 본성을 억압하지 않는 사육을 '동물복지'라고 하는데, 동물도 오래 살고 싶은 본성이 있지 않겠는가. 결국 잡아먹힐 거라면, 살아 있는 동안 행복했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모든 육식을 반대하는 극단적인 채식에도 의문이 생겼다. 답을 찾고 싶었다. (···)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세 마리 돼지를 키우고, 잡아먹었다. 사람들은 내게 왜 돼지를 키웠느냐고 묻곤 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긴 답이기도 하다. _프롤로그
_
축산 동물의 수명은 경제성에 따라 결정된다. 소는 30개월, 돼지는 6개월, 닭은 1개월을 산다. 사료 전환율이 가장 높은 시점이다. _161p.
_
'먹방'의 시대다. 고기의 식감에 대해, 육즙에 대해 우리는 말한다. 단백질 보충이나 힐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기도 한때 숨 쉬는 생명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따뜻한 피가 흘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죽어서 우리에게 오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_184p.
식탁 위에 오르는 고기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우리가 동물을 사육하고 식량으로 섭취하는 것처럼 '우주 어딘가에서 지구를 사육장으로 여기는 외계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던 적은 있었다. 저자는 10년간의 군 생활을 뒤로하고 배낭여행을 다니며 막연히 농촌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2014년 귀촌해 농촌에서 돼지가 자라는 환경을 보고 채식을 결심하고 '동물을 키우고 먹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잘 손질되고, 포장되어 조리만 하면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고기들, 돼지가 고기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1년이 안되는 시간 동안 세 마리 돼지를 키우고 먹었으며 적어간 저자의 긴 답변은 채식과 육식, 농장과 공장, 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고기의 이면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3분 요리처럼 '띵동'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자연 양돈', '윤리적 도축' 생명을 정성 들여 키우고 죽여서 먹는 과정을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고귀함을 지킨다는 면에서 채식의 연장으로 생각했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비윤리적이었다. 이렇게까지 고기를 먹어야 하나? (언제든 잊히면 또 먹겠지만...) 무거운 이야기지만 현장에서 경험한 저자의 생생한 필력으로 위트 있고 생생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육식을 애정하고, 채식을 고민하는 동물과 관계 맺고 있는 모두가 마주해야 하는 질문일 것이다.
돼지를 흙에서 기르고 싶었다. 우리나라 돼지의 99퍼센트는 평생 흙을 밟아보지 못한다. 사방이 막힌 시멘트 방에서 분말 사료만을 먹으며 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산다. 우리 법은 동물을 흙에서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동물의 똥오줌이 지하수나 하천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인간이 돼지를 길들인 1만년의 세월 동안 인간과 가축, 자연 사이에 오염은 없었다. 오염은 동물을 과도하게 밀집시켜 키우면서 생겨났다. _34p.
만약 고기 섭취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면? 고기가 필수 식품이 아니라 그저 기호식품이라면?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육식은 인류가 극복해야 할 문화라고 했다. 채식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_117p.
윤리적 도축이라는 말이 있다. 도축에 '윤리'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 윤리적으로 죽인다니, 대체 무슨 말이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죽는 마당에 예의가 무슨 소용인가. '동물복지'도 결국 사람 중심의 생색은 아닐까?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자기 위안 말이다. (···) 측정할 수는 없지만, 생명을 거두는 데에는 어떤 책임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축장에 맡겨둔 우리의 책임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책임은 외면하면 그만인 책임인 걸까? 하루 평균 7만 마리씩 도축되는 돼지의 넋은 누가 위로해 줄까?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쪼개지고 흩어진 우리의 책임이 어디로 가는 건지 생각해 본다. _139p.
우리는 더 이상 가축을 직접 잡지 않는다. 먹기 좋게 포장된 상품으로 만난다. 손질할 필요도 없다. 간단히 굽거나 볶기만 하면 되는 식재료일 뿐이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을 일 없으니 돼지에게 미안할 일도 없다. 상품으로서의 고기만 취하는 현대인은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_ 151p.
세 마리 돼지가 떠난 자리에 봄이 오면서 토마토 싹이 났다. 돼지 똥에 있던 씨앗들이 싹을 틔운 것이다. 지난여름, 돼지는 토마토의 시간을 보냈다. 토마토를 먹고 또 먹었다. 토마토의 시간은 갔고, 이제 돼지의 시간이 되었다. 토마토는 돼지 똥의 양분으로 자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먹고 서로에게 먹힌다. 나도 무언가의 양분이 될 것이다. 생명만이 생명을 줄 수 있다. 돼지를 키우고 또 잡아먹으면서 생명을 먹는 것의 책임을 곱씹어 보았다. _156p.
#돼지를키운채식주의자 #이동호 #창비 #사회 #생태환경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