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의 온기 -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 작가의 숨
윤고은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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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지고 밤이 스며드는 시간에 지하철로 한강을 건너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새삼 깨닫는다. 이 열차를 놓치고 다음 열차를 탔다면, 그다음 열차가 고작 몇 분 뒤에 이어지는 거라고 해도 나를 홀린 이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밤이 우리를 찾아오는 속도는 차근한 것 같으면서도 순간이라서 언제 오렌지빛 등불의 조도가 바뀔지 언제 해가 조금 더 멀어질지 언제 도로 위 흐름이 바뀔지 알 수 없다. (···) 아침에 말간 표정을 짓고 있던 도시가 얼마만큼 화려해지는지 알고 싶다면 해 질 무렵 한강 다리를 지하철로 건너가야 한다. 물론 열차 안의 혼잡도와 기상 상황에 따라 매혹이 아니라 그냥 퇴근길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_136p.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과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를 집필한 저자. 라디오 <윤고은의 EBS 북 카페>를 진행하고 있는 윤고은의 첫 에세 「빈틈의 온기」,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라는 부제는 매일의 일상, 그 빈틈에서 발견한 온기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1 빈틈을 키우고 있습니다

2 출근길, 일단 타고 봅니다

3 그 여행의 기념품은 빈틈입니다

4 빈틈을 기록합니다

 

삶을 반짝이게 했던 순간들, 돌이켜보면 현재보다 지난 시간들에서 그러한 조각들을 찾게 된다. 미술관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가던 한산한 시간의 지하철, 이른 새벽잠에 취해 도착하는 출근길, 해질녘 한강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던 노을, 한낮의 반짝이는 강의 풍경... 서울을 벗어나 외곽으로 이사하며 이러한 순간들이 너무도 오래전 일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걸어 다니기엔 애매하고 차로는 왕복 10분 거리도 안되는 곳에 살면서, 출퇴근길이 주었던 일상의 여백이 간절해질 줄이야...

 

때로 나만 알고 싶지만, 한편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는 책을 읽게 된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글의 중간 등장하는 저자가 애정 하는 작가들의 소개나 책도 놓치지 말아야지! 출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빈틈의 소중함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 코로나로 일상의 제약이 많아 지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상행선 열차의 근접 신호-벨 소리를 들으면, 신호를 이렇게 미리 보내는 것들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랑도 나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어, 또렷한 신호를 주면서 들어오지 않고 어떤 슬픔도 나 지금 그쪽으로 갈 거야, 몇 시 몇 분에 널 태우고 갈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 아무 기척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우리는 그 안으로 흡수된다. _142p.

 

세상의 모든 만남이 그렇듯이 책과의 만남도 시기를 탄다. 그 책을 말날 때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어떤 인생의 어떤 계절을 통과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책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이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거나 도발하거나 위로했다는 말을 들으면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이 만났던 어느 시점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책은 우리 산책의 가로등 같은 것, 가로등이 없어도 우리는 걸을 수 있지만 있으면 덜 외롭겠지. _3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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