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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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달까지가자

 

??진정한 페이지터너, 권태로운 삶에 권하는 한 권의 책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 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 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서서히······차츰차츰······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감히 더 바랄 수 있을까? _98p.

 

이십 대 초반, 직장 생활을 하며 다양한 모습의 또래들을 보고 경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학자금 대출, 월세, 생활비 등등 월급으로 자신의 생을 꾸려가야 하는 회사원들의 삶은 비슷할 것이다. 유명 기업에 입사했지만 능력 없는 직장 상사, 자신들과 삶의 결이 달라 보이는 직장동료들,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늘 평균으로 깔고 가는 직무평가 등등... 자신들의 삶엔 변화가 없는 흙수저 3인방 다해, 은상, 지송의 삶에 '가상화폐' 이더리움은 이들의 삶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불안하게 넘나들며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월급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기조차 힘겨웠다면 '이더리움'이라는 열차에 올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래프를 보며 어쩌면 지금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직장 생활의 모습들은 조직에서 오래 일하며 경험해본 사람처럼 생생함은 직장인이라면 백배 공감할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가상화폐에 걸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불안의 환희의 경계에 있던 이들의 모험은 통쾌하고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 책을 읽고 이 이후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장류진의 이전적인 「일의 기쁨과 슬픔」에 이어 또 하나의 근사한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책장에 '장류진' 칸을 마련해둘 예정이다. 장류진만이 쓸 수 있는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는 책이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요즘이라면, 즐거울 일이 없는 날들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무조건 추천! 하고 싶은 책이다.

 

심지어 나는 은상 언니와 지송이를 어릴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보다 더 가깝게 느꼈다. 오히려 '원래 친구들'보다 할 이야기도 훨씬 많고 잘 통하는 면이 있었고 가끔 그런 사실을 곱씹어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었고 그래서 내게 벌어지는 일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회사 일'이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웃기는 일도, 화나는 일도, 통쾌한 일도, 기가 막힌 일도. 은상 언니, 지송이와 그런 일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주요인물과 선행 사건들을 공유하고 있어서 배경 설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_30p.

 

"들어와. 더 늦기 전에."

은상 언니는 '들어오라'라는 표현을 썼고, 그 때문인지 나는 내가 무언가로 통하는 입구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아등바등의 세계로부터 고공 행진의 세계로 넘어가는 문턱을 밟고서. 그 안쪽을 자신 없이 기웃대면서. _100p.

 

우리의 일상은 아무리 탈탈 털어도 부모가 대졸자라거나, 더 나아가 공무원이라거나, 전문직이라거나 즉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라는 정보 값은 없었다. 대신 여러 가지 이유들로 집안에 빚이 있고, 아직 다 못 갚았으며, 집값이 싸고 인기 없는 동네에 살고, 주거 형태가 월세이고 5평, 6평, 9평 원룸에 살고 있다는 공통 정보가 나왔다. _105p.

 

무엇보다, 우리 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묘하게 박탈감이 느껴져서 불쾌하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큰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를 매일같이 가까이서 듣다 보니 자신은 그냥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뭔가 크게 잃는 기분이 든다는 거였다. 가상화폐에 관심 없는 내가 바보인가? 가만히 있는 사이에 손해를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_119p.

 

"우리 같은 애들은 어쩔 수가 없어."

우리, 같은, 애들. 난 은상 언니가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세 어절을 말할 때, 이상하게 마음이 쓰리면서도 좋았다. 내 몸에 멍든 곳을 괜히 한번 꾹 눌러볼 때랑 비슷한 마음이었다. 아리지만 묘하게 시원한 마음. 못됐는데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만 못된 마음. 그래서 다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 _193p.

 

"있잖아······ 다 잘 될 거라고 했던 거. 달까지 갈 거라고 했던 거."

지송이와 내가 양옆에서 언니를 바라봤다.

"뭐랄까, 사실 그건 주문 같은 거였어. 그냥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될 거라고 믿어야만 했어. 잘되지 않을 수 있고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도 한쪽으로는 늘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어. 그래서 문득문득, 찌르듯 괴로웠어." (······) 위험은 우려, 모험은 무릅쓰는 것. 위험과 모험 사이 어딘가에 우리 셋이 점점이 앉아 있었다. _327~328p.

 

"예전에 언니가 그랬잖아. 돈의 속성을 알아내고 말 거라고. 돈이 어디로 가는지,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그런 것들을 밝혀낼 거라고."

"그랬었지."

"그거, 알아냈어?"

내게서 시선을 거두며 잠시 먼 곳을 응시하던 언니가 다시 입을 뗐다.

"응, 이제 알 것 같아."

"어느 쪽으로 가는데?"

여전히 시선을 바다에 둔 채, 언니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돈도,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가는 거야."_3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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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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