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건너뛰기 트리플 2
은모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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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오프닝건너뛰기

 

"처음 보는 건데도 오프닝을 안 본다고?"

"건너뛰는 게 습관이 돼서."

"와, 나는 이런 기능은 누가 쓰나 했어. 알고 봤더니 우리 집에 있을 줄이야." 경호가 신기해했다. "자기야 타이틀 시퀀스는 작품이랑 세트야. 레스토랑 가서 식전 빵만 먹을 거야? 그러는 거랑 똑같다고." _043p.

 

한국 단편소설의 현장을 마주하는 가장 빠른 <트리플> 시리즈의 2번째 작가는 은모든의 「오프닝 건너뛰기」이다.

<오프닝 건너뛰기>는 삶의 어느 한 시기도 영화나 드라마의 시작 전 '오프닝 건너뛰기'처럼 필요한 부분만 선택할 수 있다면 삶이 조금은 수월하게 느껴질까? 수미는 경호와의 결혼으로 따스함과 안정을 원하지만 생활 중에 그에게 보이는 모습들에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에 닮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이대로 괜찮을 걸까?' <쾌적한 한 잔>의 은우는 자신의 삶에 만족스럽다. 은근한 부모님의 결혼에 대한 기대, 동창인 소하의 은근한 대시도 불편한 마음이 들 뿐이다. '이대로가 좋은 걸'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가족의 구성,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바뀌고 있는데도 은근하게 압박해오는 주위의 요란함이 싫다. 혼자서 즐기는 한 잔의 칵테일을 마시며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온도와 머물 수 있는 환경에 대해 가늠해보는' 은우의 마음이 낯설지 않다. <앙코르>의 세영은 가족을 잠시 떠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 뿐인데 결혼한 언니의 비난을 받는다. '삶'은 오롯이 '나'만의 것일까?

 

세 편의 단편들은 나름이 이유로 마음이 갔고 그래서 천천히 또, 다시 읽게 되는 문장 들도 있었다. 잔잔하고 담담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은모든 글은 잘 들어줄 것만 같은, 피어나는 봄과 같은 책이다.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반겨주는 얼굴을 보는 순간마다 수미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일의 따스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면 그 온기를 전해준 사람이 지나는 곳마다 켜둔 형광등을 끄느라 분을 삭여야 했다._014p.

 

경호가 품고 있는 따스함과 단순함, 그 두 가지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것은 연애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과일의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도려내듯 필요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원하는 부분만 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누군가와 한집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의 본질은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_ 026p.

 

사람들은 아주 간단하다는 듯이 눈을 낮추라고 이야기하지만 서른이 넘어 만난 타인은 하나같이 너무 다르고, 또 멀더라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정작 만나면 별달리 즐거울 것도 없는 동창 모임도 소중하다고 했다. 어찌 됐든 익숙하니까. 상대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신경 쓰면서 애써 자신을 포장할 필요는 없으니까. _075p.

 

단지 열정적인 키스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벌거벗고 잠자리를 하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_079p.

 

조카들이 태어난 이래 한동안 밀접하게 조정했던 가족들과의 거리를 재조정할 필요성을 느꼈으므로 세영은 일찌감치 올해 추석 연휴에 홀로 앙코르와트를 보러 갈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득달같이 연락해온 언니의 입에서 여지없이 이기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_088p.

 

#은모든 #트리플 #자음과모음 #단편소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책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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