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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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부르는 이름》은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사랑을 해본 사람들을 향한 선사에 다름이 아니다.

'나'보다 '너'를 연민하는 마음. '나'보다 '너'가 마음이 아프거나 상처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너'가 '나'의 마음에 보답해 주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먼저 '나'를 내어주는 마음. '나'의 가혹함을 덜어내고 '너'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마음. 아마도 이러한 마음들이 다름 아닌 사랑의 감정일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부분을 이끌어내준다. 참 고맙고 다행이다.


어른이 되면 어른의 삶을, 어른의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를 훌쩍 넘어서고 나니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구나...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 무색하게도 참... 치기 어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구나 생각해 보게 된다. 순간은 영원하지 않고, 한 번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얻어진 것들도 있다는 걸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 마주하게 되고, 그 문장을 되풀이해 읽으며 지나간 마음들과 시간들의 안녕을 물었던 <가만히 부르는 이름>.


어른들의 사랑을 하는 수진과 혁범, 그저 바라보고 좋아하는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한솔과 수진. 서로 다른 사랑의 온도에 조금씩 한솔에게 마음이 기울지만 수진의 선택은, 어쩌면 이런 결말을 예상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한 편 그녀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 어쩌면 보지 않았더라면, 몰랐더라면 나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나'만은 행복할 수 있었을까?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다운 선택은 아마도 변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 계절 읽어 더없이 좋았던 임경선 작가님의 소설, 시절을 함께 해준 고마웠던 이들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한편 그저 잘 살아주기를...


"어떤 일들은 나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럴 때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일들은 알아서 흘러가게 둘 수밖에 없어. 어디로 흘러가든 그야 내가 알 바가 아니고."

그는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_38p.


한솔의 해맑은 질주가 그저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점점 줄어간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열정을 느끼는 일에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그동안 한솔이 얼마나 많은 말을 속에 담아두고 참고 있었을지, 수진은 과거의 자기를 보는 것 같아 목이 조금 메었다. _60p.


수진에게 선량한 어른들의 호의는 결코 의심받아서도, 질문받아서도 안 되는, 옳고 선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 그런가? 어쩌면 그 호의들조차도 참고 견뎌내야만 했던 것들에 불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수진은 불현듯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결국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자신이 스스로를 몰아세워 본래의 나를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은 것이 아닌가. 타인에게나 '좋은'사람이었지, 스스로에겐 조금도 '좋은'사람이 아니었다. _123~124p.


"엄마도 한때는 이별이 구원할 길 없는 결말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알게 된 많은 것들은 항상 '이별'이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자신의 의지로 버릴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야 할 때도 있고,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 어쨌든 이제 그것들이 내 곁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 무게나 선명함, 그리고 소중함을 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살다 보면 알게 돼.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 얻은 것이란걸." 무심코 '엄마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있던 수진은 속으로 울컥했다. _136p.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서 수진은 생각한다.

결혼생활은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불행하다고. _208p.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행여 그 '장소'가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기억만은 남을 것이다.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을 이루는 바람과 공기와 비의 냄새 사이에서 불현듯 어떤 익숙한 감각들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_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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