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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어. 언제나 그랬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 모른다.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큰 거짓말이었지만 그녀는 이해했다. 세상이 그를 어떻게 짓밟았는지 생각하면.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랬다. _258p.
3년 전, 마스크도 없고 여행이 자유로웠던 2017년 가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코라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던 콜슨 화이트헤드. 2017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2020년 <니클의 소년들>로 퓰리처상 역사상 이례적인 두 번의 수상을 한 작가라고 한다. 페이지 수에 비해 가독성이 뛰어나지만 읽고 난 감상을 정리하기엔 쉽지 않은 책이다.
사회에서 다양한 죄를 짓고 니클 아카데미에 모인 소년들은 입소하는 순간 백인과 흑인으로 나뉘어 생활하게 된다. 죄수가 아닌 학생으로 부르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게 하지만 수업은 형편없었고, 그저 소년들의 노동을 착취하며 니클의 학생주임과 직원들의 분풀이 대상, 성 노리개 등 한낱 유희로 여기며 스펜서 학생주임은 기분에 따라 클리블랜드의 아이들을 아이스크림 공장으로 데려가 채찍질하며 공포로 아이들을 다스린다. 엘우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 같던 이야기는 니클아카데미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간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고, 잔인할 수 있다는 건 지난 오랜 세월 수많은 전쟁의 역사들과 기록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지만, 역경을 딛고 살아내 치유하며 보란 듯이 살아내는 것 또한 사람이 아니던가.
인종차별은 있지만 평범했고 자신이 잘하는 공부와 근면 성실함으로 지금의 삶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공부를 하고 싶었던 엘우드. 한 번의 히치하이킹이 그를 감화원으로 가게 했고, 그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책장을 덮으며 이 책이 허구이며 작가의 상상이라는 첫 문장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알 수 없는 적의만 가득한 배척, 육체의 고통과 영혼까지 송두리째 흔들려버릴 것만 같은 고통은 '언젠가 졸업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년들의 이야기와 삶을 그저 응원하며 묵묵히 읽어낼 뿐이다.
월마 간호사는 찰과상이나 기타 질병으로 찾아온 백인 소년들에게는 마치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다정하게 굴었다. 그러나 흑인 소년들에게는 단 한 번도 상냥한 말을 해주는 법이 없었다. 엘우드의 환자용 변기를 대할 때는 특히 모욕을 당한 것 같은 태도였다. _97p.
여기에서 특별히 사람들이 변하는 게 아니야. 여기든 바깥이든 다 똑같아. 다만 여기서는 아무도 가식을 떨지 않을 뿐이지. ... (중략)... "그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야." 나라와 법뿐만 아니라 엘우드의 법칙에도 어긋났다. 모두가 외면하고 묵인한다면, 모두가 한패라는 뜻이었다. 만약 그가 외면하고 묵인한다면,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공범이었다. 그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은 언제나 이랬다. _107
니클에서 자행되는 만행에 지침이 되는 상위 원칙 같은 것은 없다는 가설. 상대가 누구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악의가 있을 뿐이었다. _111p.
터너는 지금껏 엘우드 같은 녀석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리에 자꾸만 떠오르는 단어는 '굳건하다'였다. 텔러해시 출신인 엘우드는 착하고 무른 모범생처럼 굴면서 짜증 나게 자꾸 설교를 하려고 드는데도 그렇게 보였다. 녀석이 쓰고 있는 안경을 발로 밟아 나비처럼 짓이겨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엘우드는 백인 대학생 같은 말투를 썼고, 꼭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을 읽어 자기만의 원자폭탄에 쓸 우라늄을 캐냈다. 그래도 여전히 굳건해 보였다. _135p.
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없다. 니클의 인종차별은 지독했다. _137p.
고통을 견디는 능력. 엘우드를 포함해서 니클의 아이들은 모두 이 능력과 함께 살아갔다. 이 능력 속에서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꿈을 꾸었다. 그것이 지금 그들의 삶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들은 스러졌을 것이다. 구타, 강간, 그들 사이에서 가차없이 벌어지는 적자생존. 그들은 견뎠다. 하지만 그들을 망가뜨린 자들을 사랑하라고? 그게 가능할까? _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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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