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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종료
사카이 준코 지음, 남혜림 옮김 / 사계절 / 2020년 10월
평점 :

가족은 분명 멋진 것이지만, 가족이 유일무이한 행복의 형태였던 시대에는 갑갑함이 우리를 따라다녔습니다. 번식 행위만이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섹스, 섹스 없는 정, 또는 둘 다 없어도 돈만 있으면 된다든가, 돈이 없어도 음식 취향이 일치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다양한 연결 방식이 존재합니다. _249p.
가족이란 뭘까? 「가족종료」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미 가까이 다가온 현실을 저자는 그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를 이어야지'라는 생각이 강했던 부모님은 남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출산을 하셨고, 많이 들었던 말이 '00 아니었으면 너네는 동생이 더 있었을 거야. 동생 잘 챙겨라.'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을 봐도 그런 가정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남학생보다 여학생 비율이 높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사는 동생들. 자매 간이 유난한 우리를 보며 "난 너희처럼 못 지냈는데, 너희는 참 잘 지내는구나." 하시며 엄마 시절의 이야기를 간간이 이야기하시곤 한다.
비혼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같은 공간에 매일 출퇴근 하다보니, 부모님의 노후에 대해, 나의 미래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된다. 부모님께 필요한 물품을 챙겨드리고, 옆에서 김장이나 요리를 배우다가도 '난 딸이 없으니까 이런 미래는 없겠구나.', '30년 후쯤 나는 늙었을 테고 나를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종종 스치곤 한다. 우리와 놀랍도록 비슷한 일본 가족의 모습들.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며, 결혼은 대를 잇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부담 없으니 기대도 하지 않게 되는 사실혼 관계는 기존 가족의 형태 종료와 새로운 가족의 시작 등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가족이 사라지는 풍경의 중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다. 혼자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평범해질 시대, 함께 읽고 생각해봐도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한동안 병으로 요양 중이던 오빠가 세상을 뜨면서 제게 '가족'이었던 사람은 이제 아무도 세상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 (중략)... '대를 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은 어째서 제 세대에서 소멸하게 된 것일까요? _들어가며
저도 장차 할머니가 되겠지요. 아이가 없으니 손주가 생길 리는 없지만, 순조롭게 나이를 먹다 보면 일반적인 의미의 할머니는 될 것입니다. 그때 주위에서 저를 '할머니'로만 본다면 속상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할머니, 건강하세요.", "할머니, 짐 들어드릴까요?" 하며 저를 할머니로 대하면 어쨌든 그 기대에 부응해서 인심 좋은 할머니 흉내라도 내보기야 하겠지만, 속으로는 잘생긴 요양사를 보며 설레기도 하고 음흉한 생각을 하며 히죽히죽 웃기도 할 것 같네요. _71p.
지금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성만 파트너가 되는 것도 아니어서 동성과 함께 사는 사람도 있지요. 이렇게 '가정'의 이미지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_93p.
어른이 되면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가 키운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각자가 자라온 시대와 환경을 감안하면 '그런 성격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내 성격과 인생도 부모, 부모의 부모, 또 그들의 부모, 하는 식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엮어낸 인과因果가 얽히고설켜 빚어진 결과인 거겠지요. _196p.
조카를 유사 자녀로 여기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아이들을 반쯤은 남으로 봐야 합니다. 육친으로서의 애정을 갖는 한편으로, 타인으로서의 냉정함도 함께 가져야 하는 거지요. _221p.
일본에는 껍데기만 남은 법률혼 생활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애 때문에', '돈 때문에', '남들 시선 신경 쓰여서' 법률혼의 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법률혼의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사실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_236p.
예전에는 국가로부터 '당신들은 정상 가족입니다.'하고 인정받은 사람들만 가족으로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자기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형태든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_2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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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