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비망록 ;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

픽션 ; 소설이나 희곡 따위에서,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냄. 또는 그런 이야기.

책을 읽기 전,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글은 꽤나 적나라하고 자극적이며 글에 묘사된 풍경들이, 냄새가, 그 음탕함들이 그대로 번져 나올 것만 같았다. 초반의 진입장벽을 넘겼을 즈음, 술에 찌들어 밑바닥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저자의 삶을 날것 그대로 이야기한다.

이건 강간이야!!! 싶을 정도의 높은 수위의 묘사, 술에 절어 사는 사람들, 이저리튀는 이야기들, 사건들. 1960년이라는 혼란한 시대를 반영하는 듯하기도 하다. 혼란한 시대, 혼란한 사람들, 살인, 무분별한 성, 그런 혼란함 속에 반짝! 하고 떠오르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던 글.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은 밑바닥을 두루 경험해본 그였기에 가능한 글이었을까? 찰스 부코스키는 당대 미국의 가장 저명한 시인이자 산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많이 모방되는 시인으로 꼽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런 음탕한 글을 누구나 쓰려 한다고 써지지 않는 것임에도 이유가 있겠지.... 읽는 내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도 곧 읽어볼게요!

최근에 지성인을 너무 많이 봐 왔다. 입을 열 때마다 주옥같은 말을 내뱉는 소중한 지성인들에게 진짜 신물이 난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속으로 계속 숨 쉴 자리를 만드는 데 이골이 난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들과 떨어져 지냈으며, 지금 사람을 만나 보고 다시 내 동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에 걸리는 게 더 있다. 곤충과 야자수와 후추통인데 내 동굴에 후추통을 갖다 놓을 거라 생각하니 웃겼다. 사람은 항상 배신한다. 그러니 절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_40p.

무엇이 사람을 괴롭히는지 단정 지을 수 없다. 아주 사소한 것도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끔찍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근심/두려움/고통이 주는 피로는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생각에서 지워 버릴 수도 없다. 판금 조각처럼 몸에 박혀서 떨어지지 않는다. 시간당 25달러를 받아도 말이다. 나도 안다._141p.

어느 날 밤 불이 모두 나갔을 때 침대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깨어났는데 더러운 벽에서 잤지만 정신이 말짱했다. 왜 일어났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슬펐다. 한쪽 팔꿈치를 괴고 몸을 일으켜 사방을 둘러보니 모두 집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달빛이 비추는 쪽에 놓인 빈 와인 병만 보였다. 속이 부대끼는 힘든 아침이 기다리고 있어서 침대 주변을 살피니까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어떤 여자가 나와 같이 있기로 했나 보다. 그건 사랑이고 용기다. 젠장, 누가 진짜 날 이해해 줄까? 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영혼에 엄청난 용기를 품은 사람이다. 나와 같이 있을 용기와 통찰력, 배짱을 지닌 이 달콤하고 작은 사슴을 보상으로 취하기만 하면 된다._2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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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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