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20년 7월
평점 :

젊은 날 기억 저편의 빛바랜 사진첩을 열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은밀하고 아름답다. 당시로는 더없는 어둠이었어도 돌아보면 그것이 바로 우리 청춘의 가장 꽃다운 시절처럼 여겨지는 한 장 한 장 추억의 물증과도 같은 사진이 내게도 여러 장 있다. _159p.
1970년 춘천에서 청춘을 보냈던 한 소설가의 회고담인 「춘천은 가을도 봄」은 유신의 중간에서부터 5공의 초입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화자인 김진호가 회상하는 청춘의 단상들은 애잔하고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어렴풋하게나마 학교 수업에서, TV 영상에서 보아왔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읽게 된다. '살기 위한 이유' 이를 위해서 살아온 시간들이라고 이야기해도 좋을까? 한편 김진호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누군가는 '나의 청춘'을 조심스레 펼쳐보기도 할 것이다. (읽다 보면 뜬금없이 춘천 닭갈비가 그렇게 먹고 싶어진다.)
청춘이란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풀 내음이 날듯 푸릇한 기분이 들지만, 어쩌면 그 삶의 그 어떤 순간들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많은 시절일지도 모르겠다. 아쉬웠던 건, 시대차이가 크게 나지 않은것 같은데 화자인 김진호의 감정에 이입되지 않아 반복해 읽는 부분이 많다보니 이해가 다소 더딘 느낌이... 한 청춘의 방황,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때론 작별을 하며 성숙해지는 의미를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역사의 기록이나 영상으로 보아왔던 그 시절 이야기들은 시간이 흘러 이제야 꺼내어 놓는 한 청춘의 고백과 같은 이야기이다.
바야흐로 우리가 살기 위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선에서 빵 조각을 얻기 위해 단조롭고도 꾸준히 오고 가는 것 대신 살기 위한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세계로부터 와서 그것과 거의 똑같은 다른 세계로 가지. 우리가 떠나온 것을 금방 잊어버리며, 우리가 향하는 곳에 관심을 갖지 않고, 순간을 살고 있는 거야. 얼마나 많은 생들이 먹기, 싸우기, 혹은 떼거리 속에서의 권력 이상의 생이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끝나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니? 우리는 이 세계에서 배운 것을 통해서 우리의 다음 세계를 선택하는 거야.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다음 세계는 이 세계와 똑같은 것이지. 전혀 똑같은 한계들과 극복해야 할 짐들을 이끌고 가는 그런 세상 말이야. _12p.
대학 정문에는 이미 장갑차와 군인이 진주해 있었다. 언제까지일지 모를 휴교령 공고 앞에 걸음을 멈추고 나는 깊어가는 가을의 빈 교정을 망연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정녕 저 안에서 짓눌리며 우리가 원하고 희망했던 것이 이런 식으로 맞이할 '밤새 안녕' 과도 같은 그의 유고였던가. 어쩌면 그 허탈감은 독재자의 허망한 죽음보다 어느 날 갑자기 증오와 분노의 대상을 잃어버린 우리 가슴의 빈자리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_336~337p.
#춘천은가을도봄 #이순원#이룸 #자음과모음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