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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한번 설명해보려고 한 시도들이다. 그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고 알 수 없음을 알 수 없음으로 남겨두려던 나의 의도 또한 잘 표현되었는지 알 수 없다(혹은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_작가의말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김멜라의 「적어도 두 번」은 책표지부터 파격적인 느낌이었다. 강렬한 첫인상을 주었던 책표지는 책의 내용을 암시했던 걸까? 단편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어서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소수자, 퀴어, 상상력을 발휘해야 조금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단편들은 한 편 한편의 매력이 저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규정된 삶이 아닌 살아가며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삶의 이야기는 그 끝을 예측할 수가 없고, 끝을 알게 되었다 한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마주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삶도 있을 것이다.' 보편적인 삶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글이 아님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한 권의 책을 완독하고, 좋다 나쁘다도 아닌, 애매모호한 감정의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구병모 작가와 김건형 문학평론가의 추천사를, 그리고 작가의 말을 몇 번이고 읽어보게 된다.
당신은 이 소설들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는 읽을 수 없다. 이 책과의 만남이 편안하고 유쾌한 경험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한번 닿으면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얼음의 문장과 마취제도 없이 몸속을 휘젓는 그로테스크의 칼날을.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어떻게든 풍기 고야 마는 생의 질긴 악취를. _ #구병모
"그럼 넌 누구야?"
물고기 모자가 물었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난 구도림이고 열세 살이고 숫자 9이고 차콜그레이지만 갑자기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_ #호르몬을춰줘요
죽음은 어떤 공간이어서 계속 걸으면 나오는 길이다. 나는 쉬지 않고 그 길을 걸었다. 그 길을 산책하고 때론 다람쥐를 만나며 레사와 호흡했다. 어느 날은 내가 레사에게 물었다. 레즈비언이 되는 사주팔자도 타고나는 것이냐고. 레사는 말했다. 사주로 찾으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겠다고. 설명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고. _ #물질계
여자들은 서로의 무릎이나 뺨이 자연스럽게 손을 대며 얘기했다.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는 창을 두들기는 빗소리와 함께 공간을 떠도는 여자들의 속삭임에 파묻혔다. 그들이 내뿜는 알 수 없는 분위기에 그는 완전히 넋을 놓았다. 여성과 여성은, 그들이 나누는 무언가는 그에게 신비로운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_ #모여있는녹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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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