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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어차피 나만 보는 노트인데도 솔직한 마음을 쓰는 것이 어렵다. 직접 겪은 일을 쓰는 것도, 그때의 기분과 감정을 정확하게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럴 땐 거짓말을 쓴다. _114p.
단순히 책표지가 마음에 들어 선택했던 <내가 말하고 있잖아>, '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첫 문장에 사로잡혀서 책을 읽을 때마다 첫 문장을 읽고 다시 읽기를 시작했던 책이다. 언제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는지 모르게 시작된 증상으로 언어교정원에 다니게 된 열네 살 소년. 그곳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이유로 같은 장소에 모이게 된 사람들과 함께하며 치유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이 아닌 놀림의 대상이 되어버린 소년.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은밀한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가는데, 언어교정원에서 비슷한 결핍을 가진 이들과 언어교정을 위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함께 언어를 교정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며 서로의 모습을 상대방으로부터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뱉어내지 못한 말들을 노트에 적어가던 소년의 글은 일기 형식을 넘어서 소설의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고 소년의 내면도 그만큼 단단해짐을 느끼게 된다. 모르는 타인에서 서로의 결핍으로 연대를 하며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은 소년이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과 가족과 학교로부터 배제된 감정을 풀어가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말더듬이인 자신을 미워하고, 상처준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가던 소년이 스스로 말더듬이증상을, 그리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스스로 치유되어가는 과정은 온 마음을 다해 읽게 되는 책이다. 읽는 문장들의 결이 단단하고 고와서 꼭 필사해보고 싶은 책 <내가 말하고 있잖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해보기에도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애정 결핍자들은 안다. 우리는 끌려다닌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고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에 입은 벌어진다. _10p.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날이다. 별일이 다 있었고 별 사람들이 조금씩 다르게 마음을 건드렸다. 속지 마. 냉정한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늘 끝까지 헹가래질하다가 마지막에 받아 주지 않을 거잖아. 웃게 만든 다음 울게 만들 거잖아. 줬다가 뺏을 거잖아. 내일이면 모른 척할 거잖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하면 안 된다. 그땐 진짜 끝나는 거야. 끝. _21~22p.
책을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에겐 눈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다. 종이에 적힌 문장은 부끄러움이 많아 종이에 달라붙어 있는 건데 그걸 억지로 뜯어내 말로 하는 건 옷을 벗기는 것처럼 수치를 주는 짓이다. _34
엄마는 잘해 주고 싶어 사랑에 빠지는 여자다.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고 누군가 그 손을 잡아 주면 사랑이 시작된다. 엄마는 나와 닮아 최고 속도로 사랑에 빠지고 그만큼 깊이 상처받는다. 구멍이 뻥 뚫린 마음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하지만 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상처를 받아도 엄마는 사랑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상처를 받으려고 사랑을 하는 사람 같다. _39p.
하기 어려운 말. 할 수 없는 말. 해도 해도 더듬는 말. 단어와 문장을 낙서하듯 써 내려간 깨알 같은 글씨가 장마다 가득했다. 그것은 마치 입술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가둬 둔 감옥 같았다. 나는 손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읽어 봤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막힘이 없다. 입술에 살짝 올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더듬지 않는다. 참 이상하지. 말이 뭐길래. 소리가 뭐길래.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게 힘든 걸까. ... (중략)... 문득 그들은 왜 더듬게 됐을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을 쓰진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 그들은 왜 어른이 될 때까지 말을 고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말더듬이로 살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슬프고 기분이 나빠지는 상상이다. _66~67p.
경험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면 좋지 않다. 누구든 어떤 이야기든 오래 들으면 결국 다 힘들고 어려운 사정을 듣게 된다. 알게 되면 아는 만큼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만큼 괴로워진다. 그 사람을 걱정하게 되고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사랑하게 되고 반대로 미워하게 된다. _126p.
사람들이 내 명찰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용복아, 안녕. 오랜만이야.
환영 환영한다, 용복. _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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