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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망했는데. 세 번째 항암 치료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중략)... 오늘 밤은 제발 덜 아프기를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빌며,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끝까지 내려와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기뻤다. 아픈 걸 참지 말고 그냥 입원을 할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옆자리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사람의 죽음에는 드라마가 없다. 더디고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하다. _13p.
어릴 땐, 젊을 땐, 여리여리하고 툭하면 쓰러지는 여주인공들이 참 부러웠다. '저 주인공은 저렇게 여리고 아파서 사랑받는구나.' 아픔을 고통으로 인식하기보다 로맨틱한 상황으로 보던 시절이 있었다. 이십대엔 하루 이틀이면 나을걸, 삼십대가 되어선 며칠을 앓게 되고, 사십대가 넘어선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몇 주에서 한 달 가까이 앓기 시작했다. (가장 큰 후유증은 호되게 아프고 나면 급 늙...) 주변 지인들의 투병 소식이나 갑작스러운 부고가 들려오기도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도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붓기와 무기력증이 좀 오래간다 싶었지만, 그게 큰 병의 징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악성림프종(혈액암의 종류)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는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온 삶. 그런 오랜 생활이 그가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가난하고 젊은 청년들이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돕기 위해 고민 상담에 답장을 하며 깨달은 '불행을 인정하기'. 불행이 있다면 희망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버티며 살아야 하는 이야기들은 삶을 응원한다. 완치 판정 1년 만에, 그리고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허지웅의 글은 필력도 말투도 그대로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출간된 그의 글들 중 가장 좋았다. 허지웅, 그의 건강한 삶을 응원한다.
만약에,라고.
가장 괴로웠던 순간에는 늘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 (중략)... 만약에. 만약에. 그렇게 만약에, 가 쌓여 뭔가 단단히 움켜쥘 수 있는 닻과 같은 것이 되어준다면,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감정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나 인생은 대개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일의 연속이다. _59p.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_74p.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 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_166p.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맞다. 정말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_141p.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나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_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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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