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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오랫동안 겁에 질려 살다 보면 두려움이 어떻게 왔다가 사라지는지 알게 된다. 두려움이 나를 어떻게 장악할지도. 두려움이 어떻게 누그러지는지까지. 두려움이 내 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도. 그리고 다시 두려움이 다가오기 전까지, 희망이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놓는지도 말이다. 다시 희망이 오고 다시 두려움이 다가온다. 나는 인생에서 오직 한 가지 빼고는 두려울 게 없었다. 바로 헤로인이었다. _417p.
심플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책표지를 살짝 걷어내면 매직아이 같은 해골의 속표지를 만나게 된다. 체리,는 미국에서 전쟁에서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희망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어둡다. 부족하지 않은 가정, 대학에서의 생활은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고 방황하던 시기에 에밀리를 만나게 되었다. 마약에 취해 현실을 도피하며 살아가던 중 의료 특기병으로 군대에 입대하게 되는데, 입대 전 에밀리와 결혼까지 속전속결! 실제 전투에 투입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전쟁터에서의 하루하루는 의미도 모를 살상과 오늘의 전우가 내일은 없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게 되는데...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적응하려 했지만 점점 더 헤로인에 중독되어갈 뿐이다. 약을 구하기 위해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을 사용하고, 급기야 은행에서 돈까지 훔치게 된다.
분명 가독성은 뛰어난 책인데, 짧은 문장이 글 읽기의 호흡을 묘하게 끊는 것 같아서 짧은 문장이 모여있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읽으며 머릿속으로 문장을 다듬고 있기도 했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올 때면 이 인물로 인해 뭔가 사건이 일어나나? 기대하게 되다가도 김빠지게 정말 정석처럼 도와주고만 빠지는 인물들도 있었고, 군 복무 이후의 삶은 헤로인을 구하기 위한 과정, 과정들의 연속이라 내가 그 속에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에밀리와의 애틋한 로맨스? 러브라인도 기대했지만 그저 함께 기대어 약물중독이 되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미국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 부족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2020년 하반기 스파이더맨의 톰 홀랜드 주연, 루소 형제 감독이 영화제작 중이라고 하는데 영화로는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일에 발을 들였고,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딱 한 번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다음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버릇처럼 계속되고 만 것이다. 상황이 좋아졌다가 다시 안 좋아지기를 반복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최악의 상황에 내팽개쳐진 것이다. 어쩌면 미친 건지도 모르겠다. 총까지 들고 다니면서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_19p.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여자가 존재한다. 가끔 그 생각만으로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그렇게 많은 여자가 그렇게 반짝이면서 그녀들만의 보이지 않는 세상과 비밀스러운 언어, 그 밖의 것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을 시작하는데, 우리가 모든 걸 망가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내 인생에 나타난 포악한 살인마들로 인해 무참히 짓밟혔지만, 그들도 누군가에게 먼저 당했기 때문에 그런 거였다는 데는 한 치의 의구심도 없었다. 마치 나처럼. ...(중략)... 내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해도 에밀리의 잘못은 아니다. 이쯤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해 둬야겠다. _32p.
그때 우리가 장난으로 거기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인생을 망치거나 폭탄에 맞아 죽거나 시간을 낭비할 목적으로 군대에 왔다고 생각했지, 그게 뭐가 됐든 실제로 전쟁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_179p.
가을 무렵에야 우리 모두 살짝 얼이 빠졌다는 걸 알아챘다. 그 상태에서는 아무도 상류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다. 문을 발로 차고 집을 부수고 사람을 총으로 쏘다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시간만 낭비했다. 우리는 패배했다. _235p.
은행을 털려는 사람 중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사악하기만 한 개자식들은 절대로 남의 것을 훔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절도를 저지른다는 건 일종의 굴욕감 문제였다. 혹시 누군가에게 멸시당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조심해야 한다. 당신도 절도범이 될 수 있으니까. _3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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