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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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쪄갔어요. 제 군살은 어머니하고 다정한 주위 사람들한테 받은 사랑의 덩어리예요. _284p.

음식을 먹으며 살찔 걱정을 하지 않고 먹었던 게 얼마나 될까? 살아가는데 먹는 즐거움을 빼고 살아갈 수 있을까? 먹는데 돈을 들이고 또 그렇게 먹어서 오른 살들을 빼려고 돈을 쓰고... 다이어트에 치열했던 이삼 십대엔 열심히 먹고, 또 그만큼 살을 빼기 위해 열심히 돈을 썼다. 그럼 돈을 쓴 만큼 만족스러운 몸이 되었을까? 외모는 마음에 들었을까? 만족이란 건 언제쯤 하게 되는 걸까?

한 성형외과 의사는 외모를 바꿔서라도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성형을 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의사의 인터뷰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시골마을에서 대량의 도넛에 둘러싸인 채 자살한 소녀 유우. 그녀의 죽음에 대해 인터뷰하는 과정은 화자들의 독백 같기도 하고 읽는 이에게만 하는 고백 같은 글로 느껴졌다. 수많은 방송매체에선 더 날씬하고,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 모습들 보면서 비교 대상은 점점 더 높아만 지는 외모강박사회,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저렇게 아름답기만 하다면 내 삶도 조금 더 반짝였을까? 이런 생각 꽤 자주 했더랬다. 내가 큰 불만이 없는 외모라 하더라도, 주변에서 평가하며 가만히 두지 않는 사회, 과연 바람직할까? 미나토 가나에의 글은 일상과 사회에 깊이 닿아 있으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주제에 대해 주체가 되어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는듯하다. 어쩌면 누구나 도넛의 동그란 가운데 구멍으로 볼 수 있는 만큼의 행복만을 보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가장 맛있는 건 다른 사람은 모르는 도넛 한가운데.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도넛을 만든 적 있는 사람뿐이죠. 걔의 진짜 기분 같은 건 분명 아무도 모를 거예요. 있는데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도려냈으니까. _94p.

너한테는 요코아미가 어떤 이미지냐? 뚱보 빼고 세 개를 꼽아 본다면? 천성이 어둡다. 피해의식이 강하다. 비뚤어졌다. 응, 나도 옛날에는 똑같은 이미지였어. _109p.

결국 학교뿐 아니라 세상 전반이 어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걸로 사람을 판단하게 돼. 그래, 외모. 미인이냐, 아니냐. 잘생겼냐, 못생겼냐. 키가 크냐, 작냐. 날씬하냐, 뚱뚱하냐. ... (중략)... 외모로 성격까지 단정 짓는 경우가 있잖아? _ 146p.

시력이 나쁜 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만 외모가 나쁜 건 어떤 지장을 주는데? ... (중략)... 세상은 안 변해. 인생, 하물며 인격 형성이나 인간관계 확립에 다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창 시절은 길지 않고. 그러니 재빨리 성형을 하는 편이 낫다. 이 흐름이 옳아? 그래도 아직 시력이 나쁜 사람이랑 마찬가지라고 생각해?_147~148p.

놀림당하는 쪽에 득이 없을 때는 애정으로 놀린다고 말하면 안 돼요. 놀린 쪽이 재치 있는 말을 했다면서 만족할 뿐이라면 그건 괴롭힘이죠. 자기 기분이 좋아지려고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 거니까 그렇게 판정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_256p.

"도넛은 간식일 뿐만 아니라 마법의 도구이기도 하거든."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도넛 구멍 너머로 저를 보면서. 엄마는 계속 말했어요.

"자기가 보고 싶은 풍경을 떠올리면서 구멍 건너편을 보는 거야. 그러고 나서 그 도넛을 먹으면 구멍 너머로 그런 풍경이 현실이 돼. 그러니까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데. 엄마는 도넛을 못 먹으니까 유우가 먹어줄래?" _264~265p.

우리 모녀한테는 뭐가 부족했던 걸까?

뭐가 결여돼 있었던 걸까?

나한테 뭐가 있었다면 유우를 잃지 않아도 됐을까?

나는 앞으로 이 구멍 너머에서 뭘 봐야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면 하다못해 이 구멍을 막아줄래. _2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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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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