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왼편에 서지 말아주세요
김슬기 지음, 백두리 그림 / 봄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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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순간에 이유도 모른 채 아픈 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다시 남들처럼 평범하게 웃기 위해 버텨냈던 지난 13년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간을 돌이켜보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나에게 “슬기야, 그대로도 괜찮아. 그대로도 충분해”라며 처음으로 나를 달래주고, 보살펴 줄 수 있게 되었다. _6p.

꽤 오래전, 중학교 시절 자고 일어나니 한쪽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던 경험이 내게도 있었다. 동네 한의원을 다니며 며칠 약을 먹고 침을 맞으며 치료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는데, 당시 학기 중이어서 친구들이 가벼운 장난으로 얼굴이 왜 그러나며 놀렸던 순간. 며칠은 금방 괜찮아지겠지라는 마음이 이었지만, 치료에도 변화가 없는 얼굴을 볼 때마다 매일 지옥을 오갔던 마음.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하지? 라는 그 두려웠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주일? 열흘 정도 그 상태였던 얼굴이 거짓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났더니 괜찮아졌었던 시간이 있었다. 내 십대에도...

중학교 1학년, 즐거운 마음으로 사촌 언니에게 양보한 침대, 자신은 바닥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왼쪽 얼굴이 이상했다. 눈은 감기지 않고, 뒤틀린 것처럼 벌어진 입술로는 양치를 하는 동안에도 물이 흘러내렸다. 이후 한방치료, 대학병원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는 치료를 찾아다니며 지나온 13년의 시간. 이 책은 치유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 가족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 왼쪽 마비 얼굴을 단지 웃음거리로 되어버린 순간들도 모두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내 경우엔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긴 시간을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치료 과정을 버텨낸 저자, 그리고 가족들의 응원과 그 긴 시간. 타인의 고통을 공감해달라고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아픔을 가벼운 놀림거리로 여기진 말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상상력" 함께 살아가는 세상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생각해보고 아픔을 지닌 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난생처음 맞는 침이었다. 가늘고 기다란 침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도 못 했는데 내 온몸에 이미 세를 놓고 박혀버렸다. _25p.

안면 마비는 말 그대로 안면 신경이 마비되어 표정을 짓는 근육을 쓸 수 없는 증상이다. 다시 말해 마비가 온 한쪽의 눈, 코, 입을 움직이지 못해서 표정을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중략)... 안면 마비는 후유증이 큰 질병이다. 그렇기에 자가 진단이 아닌 병원 방문이 필수다. _46~49p.

침을 맞는 동안 억울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서러워졌다. ‘왜 하필 나지? 왜 남들 다 걸리는 감기도 아니고, 얼굴에 마비가 온 거지? 금방 돌아오는 일시적인 질병이라더니 난 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파야 하지? 친구들은 지금 놀고 있을 텐데 나만 왜 이렇게 아픈 시간을 보내야 하지?’ 이 질문에 도무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아프게 된 건 내 잘못이나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_85p.

엄마의 소원은 항상 내가 아프지 않은 것이었다. 이번에 책을 쓴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마치 부푼 꿈을 있는 소녀처럼, 책이 유명해져서 특출난 의사 선생님이 자기가 괼 수 있다고 연락을 해주면 좋겠다고 손 모아 말했다. 난 정말, 지난 13년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가족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 _159p.

안면 마비는 더 이상 나를 뒤흔들고 슬픔에 빠지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힘들었던 기억을 기록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겨주었는데, 사실 제법 덤덤하게 지나온 시간이다. 아니, 오히려 비장함을 담은 기록들이다. 그 누구도 타인을 함부로 아프게 할 수 없도록 소리 내고 싶었다. 누군가의 작은 아픔이라도 그것에 닿고 싶었다. 멀리서 얼굴도 모르는 내가 이렇게 함께 하고 있다고 말이다. _2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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