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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생기는 기분
이수희 글.그림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우선 나는 열 살 어린 동생과 전력을 다해 싸우는 유치하고 진지한 인간이라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녀석이 옹알이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동생이 나에게 혼나거나 분풀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동생은 성격 더러운 언니 덕분에 강인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_125p.
늦둥이가 대세라는데.... 이 년 전, 세 아들을 다 키우신 막내 작은 엄마가 큰아이와 23살 차이가 나는 막둥이를 출산하셨다. 우리 집을 보고 정말 딸을 낳고 싶은 마음에 아들을 셋이나 내리 낳으셨는데, 막내는 정말 기대하셨다고 한다. 딸이면 친구처럼 공주처럼 키우고 싶었다고, 그 바램이 무색하게도 네 아들 중 가장 튼실하게 태어난 막내는 온 가족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성장중이다. (작은 엄마 미안! ㅋㅋㅋ) 이미 연세가 좀 있으신 터라 아이 키울 생각에 출산 여부를 꽤 걱정하셨는데 세 아들들이 걱정하지 마시라고 자기들이 키운다고 동생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고 응원했다고 하니... 동생이란 단순히 아이의 탄생이 아닌듯하다.
출간 전 연재 때부터 무척이나 관심 있던 책이었다. 사 남매의 장녀로 성장하며 '살림 밑천', '큰 딸이니까 네가 좀...', '동생들도 있으니까..' 등등 당시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들으며 자라왔던 말들이 삶의 진로를 정하고 살아오는데 큰 영향을 받았던 건 분명한 듯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피 터지게 싸우고, 다시는 얼굴도 안 보고 살 것 같이 막말을 하며 싸우던 동생들과는 지금 그 어느 친구보다 사이가 좋고 서로를 생각하는 편이다. 주변에선 자매가 어떻게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냐고 물어볼 정도인데... 글쎄?(우리 사이 좋은거 맞지?) 부모님께 제일 감사한 건 많은 형제를 있게 해주시고,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매일 같이 일을 하시지만 큰 병 없이 건강하신 거!
<동생이 생기는 기분>은 10살에 만나게 된 동생.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었던 동생이, 어느새 훌쩍 성장해 이젠 자신과 동떨어진 삶을 살기까지의 시간과 과정을 담아낸 저자의 마음이 너무도 이해가 가고 애틋했기 때문일까? 뭉클하고 말랑했던 순간, 그리고 그 시절 이해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 깨달은 마음. 모르는대로 살아가도 괜찮은건 쑥스럽지만,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그림도 글도 너무 귀엽고 자매가, 형제가 있다면 꼭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동생의 존재가 난 무척 기뻤다. 내게 동생이 생긴다니! 하지만 그 기쁨은 이제 외동이 아니라서 외롭지 않을 수 있어서 느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단 하나의 이유, 가족이 생겨서 기뻤다. 그 사람이 궁금하고 우리가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며 살아갈지, 어떻게 자라나갈지 기대되었던 것이다. 형제가 생기는 일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가 되는 일이 아니다. 0에서 1이 되는 일도 아니다. 1과 1이 만나 서로 곱하고 나누는 일이다. 우리는 각자 1로 존재하면서 함게 아둥다웅 살아갈 것이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이. 가끔은 더하고 빼면서. _25~26p.
애기의 목 가누기라는 단어에서는 달큰한 우유 냄새가 날 것만 같다. 그냥 빼꼼 귀엽게 올리겠거니 상상하기 쉽지만 내가 목격한 목 가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작은 몸속에 존재하는 모든 근육을 가동하여 짧은 인생 최대치의 힘을 발휘해 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예감했다. '이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_73p.
자매는 도대체 뭘까? 미워 죽겠는 내 동생. 가끔은 너무 짜증 나고 싫어서 왜 동생이 있나 싶다. 먹고 치우지 않은 그릇을 보면 그 순간에는 내 인생의 유일한 적처럼 분노가 솟구친다. 그래도 말라붙은 그 그릇이 맛있는 걸 먹은 흔적이었다면 좋겠다. 동생이 하는 짓마다 애 같다고 혀를 차면서도 민증을 내미는 동생의 손이 귀엽고 소중하다. 이건 도대체 뭘까, 동생은, 언니는, 가족은. 에이,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 있어도 설명 안 해 줬으면 좋겠다. 모르는 대로 살아야지. 쑥쓰러우니까. _244~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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