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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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당신의 삶을 견디는 데 먼지만 한 위로라도 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그뿐이다. _작가의 말

고향을 떠나 삼 년 즈음을 떠도는 중인 마흔다섯 중년의 남자. 수중에 몇 벌의 옷과 구만 팔천 원이 든 지갑이 전부였다.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지만 이미 구해서,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택배기사 구함’. 타 지역에서도 몇 달 해봤던 터라, (더럽게 힘들고 개인적인 시간은 생각할 수도 없는...일이지만) 경력을 조금 보태 숙소가 제공되는 택배기사 일을 시작한다. 그가 맡게 된 행운동이란 지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저 한 공간에서 잠시 물건을 나눌 때 마주치는 사람일 뿐, 딱히 관계를 맺는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고, 어울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그의 주변엔 늘 사람들이 있다. 만나서 이야기만 들어줘도 100만 원을 준다는 여자, 보디가드를 달고다니는 동네바보 '마이클', 뜬금없이 그에게 경제철학 강의를 하겠다는 노교수, 특정 시간에 택배 배달을 요청하던 바를 드나들다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함께 일하는 주창이, 조 따꺼, 낙성대, 아파트, 인헌동, 청림이 등 저마다의 사연으로 택배 일을 하는 사람들과 행운동을 주변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인간적이면서도 이 책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급기야 그를 스카우트하겠다며 조건을 제안하는 사람들, 와! 이 사람 뭘까? 조용한 삶을 원하는 행운동의 마음과 달리 끊임없는 사건사고에 마음졸이기도, 때론 묵직한 감동과 위로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드는건 뭘까?

이 책을 읽기전, 책의 제목과 택배기사를 소재로한 한국형 하드보일드 소설! 이라고 해서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포>를 떠올린 사람은 나 뿐이었을까? ㅋ 택배를 소재로 벌어지는 이야기라 스릴러를 생각했는데, 그저 조금 특이한 캐릭터인 주인공을 중심을 벌어지는 작은 소동들? 제목의 침입자들은 그저 조용한 삶을 살고자 했던 남자의 삶에 끼어든 주변인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을까? (ㅋㅋㅋ) 글에 꽤 자주 등장하는, 그가 일을 마치고 소주를 마시며 읽는 책들을 재미 삼아 기록하며 읽었는데 18명의 작가와 수많은 책들이 등장한다.(어쩌면 체크하지 못하고 지나친 작가들이 더 있을지도..) 시니컬하지만 매정하진 않고, 어떤 위기가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이 사람 정말 과거에 뭐 하던 사람일까? 마지막 즈음에야 슬쩍 그의 과거를 살짝 언급하며 다음을 예고하는 듯 아스라한 마지막, 작가님 혹시 다음 편도 준비 중이신 건가요? (기다리겠습니다!)

* 화자인 택배기사 행운동이 읽고, 언급한 책들

부코스키의 <팩토텀>

마틴 크루즈 스미스 <레드 스퀘어>

로드 독스 <엘모어 레너드>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조지 오웰 <숨 쉬러 나가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레이먼드 챈들러 <안녕, 내 사랑>

도스토옙스키 <가난한 사람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이언 플레밍 <Quantum of solace>

로알드 달 <달리는 폭슬리>

마광수 시인 <효도애>

켄 브루언 <런던 대로>

레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

발자크 <골짜기의 백합>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서머싯 몸 <면도날> <인간의 굴레>

마틴 크루즈 스미스 <고리키 파크>

“자본주의라고요? 고객님 자본주의 논리를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자본주의 논리로 해보죠. 이 택배 배송비가 천백 원이에요. 아침에 분류 작업하는 노동비, 배송 노동비, 차량 유지비, 유류대, 보험료, 전화비, 클레임과 분실 비용, 제 이윤 등을 빼고 나면 여유분은 아예 없거나 많으면 일 원이나 이 원이 남을지 몰라요. 택배 하나당 말이죠. 그럼 설명 좀 해주세요. 도대체 일 원이나 이 원의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케인즈 관점의 거시경제학으로? 아님, 하이에크의 영향을 받은 신자유주의 논리로? 설마 마르크스의 잉여노동으로 설명하실 겁니까? 혹은 애덤 스미스의 푸줏간 주인의 이기심? 어떤 논리로 저를 설득시키실 건가요?” _79~80p.

“평소보다 약간 빠른 걸음이면 돼. 다만 쉬면 안 돼. 담배를 피우고 있건 잡생각을 하고 있건 아무튼 다리는 움직이고 있어야 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이 일은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꾸준히 멈추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지. 그리고 해보면 알겠지만 그게 무척 힘들어. 아프거나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하고 기분이 좋아도 체력적으로 오버하면 안 돼. 매일 같은 보폭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지. 말은 쉽게 들리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무척 힘들어. 얘기를 나눌 상대도 일상의 변화도 없어. 매일 똑같은 택배와 고독만 있지. 뭐, 성격에만 맞는다면야 구도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_1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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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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