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에게는 아무래도 공통점이 많지. 이 골목과 저 골목이 비슷한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잘 살펴야 한다네. 그저 비슷해 보일 뿐. 이 골목과 저 골목은 전혀 다른 골목이니까.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고, 다른 흔적들이 남아 있고, 다른 인생들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골목에서 사는 사람이 저 골목에서 사는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게 또 인생 아니겠니. _229p. #최저임금의결정
마음먹은 기간에 읽어내고 싶은 책들이 있다. 때론 몇 년의 해를 계획만 하다 책장에 방치된 채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읽어야 할 책들을 뒤로하고 먼저 읽게 되는 글도 있는데 이장욱의 소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을 손에 들었을 때, '이 책은 4월이 가기 전에 읽어야지'라는 혼자만의 마음가짐을 했더랬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쓰인 단편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 책은 작가 이장욱의 작품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고 할까? 때론 일상 깊숙이 다가오는듯하다가도 어느새 몽환적인 세계로 이끄는 독특한 소재도 매력 있었던 글. 곱씹어 보게 되는 문장을 발췌해두고 몇 번이고 읽어 꿈도 꾼 건 안 비밀! 어느 계절에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추천하고 싶은 책.
오늘 아침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나는 미국 맨해튼에도 가보지 못했고 티벳 라싸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어쩐지 그 세계의 뒷골목에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 늦은 시간에 일어나 잠시 스트레칭 자세를 취한 뒤 슈만의 환상 소곡집을 틀어 놓고 맞은편 빌라의 외벽에 가로막혀 있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이런 순간에는 갑자기 인생이 정지해서 다시 시작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느낌. 마커스 뮐러로 음악을 바꾸고 몸을 흔들어도 영영 깊은 물속 같은 기분은 마찬가지. 이것이 오늘의 기분. _76p. #에이프릴마치의사랑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당신, 소설가라고 했지요? 지금 내가 한 얘기가 소설이 될까요? 된다구요? 뭐라고 쓸 건데? 복화술로 무책임하게 욕이나 하는 놈이라고 쓰는 건 아니겠지? 정신없이 이말 저 말 왔다갔다 하는 게 복화술이라고 쓰는 건 아니겠지? ...(중략)... 의심스러우신가요? 의심스럽다고? 야 이 새끼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_116p. #복화술사
뭔가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마음속의 구멍과 비슷하다. 구멍으로 바람은 들게 마련이고, 그런 바람이라도 들어야 숨을 쉴 수 있는 법이니까. _119p. #크리스마스캐럴
당신처럼 나도 밤을 좋아한다. 특히 새벽 네시.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도 그 시간에 일어나기는 쉽지 않고, 늦게 잠드는 사람이라도 그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기척이 희박한 시간. 인간의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간. _215p. #최저임금의결정
#에이프릴마치의사랑 #이장욱 #한국소설 #문학동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