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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 따라 산다 - 차와 함께라면 사계절이 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19년 12월
평점 :

어느 날, 책장에서 낡은 노트 한 권을 꺼내어 펼쳐들었다. 그 안에는 십여 년 전에 적었던 짧은 글들이 담겨 있었다. 글을 적은 건 대개 일주일에 한 번, 다도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처음에는 그날의 수업 내용이나 족자, 꽃, 다구, 과자 등을 기록해두었다. 그러다 점점 다도실에서 나눈 대화, 수업 중에 느낀 감정, 그날그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적어나가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많은 계절이 보였다. 우리가 이 다도실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간을 보내왔는지도....
그중 일 년을 이곳에서 돌이켜보려고 한다. 그 노트에 나는 '호일 일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_15p.
영화 <일일시호일>의 개봉에 맞추어, <계절에 따라 산다>를 집필하게 된 책이라고 한다. 오십 대 즈음의 몇 년 동안 적어온 노트가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다도 수업의 기록인 동시에 계절의 순환에 대한 기록이라고 한다. 이전작인 책도 꽤 차분하게 빠져들어 좋은 기분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어 작년에 읽었던 책을 꺼내어보기도 했다.
"마음이 소란하고 지칠 때도
꽃이 피면 꽃을 보고
단풍 들면 고개 들어 그 빛깔을 봐야지."
"차 같은 건 너무 고루해."라고 생각하며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다니기 시작한 다도,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는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는 다케다 선생님댁으로 향하는 길을 언제나 무언가를 품은 채 걸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발걸음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만 같다. 일, 인간관계, 장래에 대한 불안이나 집안 문제, 마음의 상처 등 작은 일에도 일일이 상처받지만 살아가야 하기에 한숨을 쉬며 선생님댁으로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묘사한 글을 읽으며 조금 어수선했던 내 마음도 그 정경들을 상상하며 차분해짐을 경험하게 한다. 차와 함께 하는 순간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간' 속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수업의 풍경, 그날의 족자, 감정, 계절, 과자 등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수록된 일러스트 몇몇은 기존 사용되었던 이미지이고 나머지는 전부 새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사실 과자에 대한 일러스트를 보고 있으면 '이 과자는 어떤 맛일까?' 궁금해 질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마음만 분주한 일상,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온몸으로 맞이해보는 사계절. 「계절에 따라 산다」를 읽으며 흐름대로 살아가는 삶, 계절의 변화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길다면 긴 시간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의 흐름을 만끽할 수 없는 조심스러운 봄, 천천히 우러나 천천히 스미는 날마다 좋은날, 모리시타 노리코의 책을 권해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어렸을 때는 부모님 말씀만 잘 들으면 안전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지켜주던 부모님의 등이 어느새 작아졌다. 이젠 내가 지키고 떠받쳐야 할 입장이 되고 보니 세상에 확실한 안전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_34p.
"슈ㅡㅡㅡㅡㅡㅡ."
가마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솔바람'이 울린다.
유키노 씨가 툭, 중얼거렸다.
"고요함의 소리네...."
수증기가 은은히 피어오르는 따뜻한 방에 앉아 솔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의 술렁거림도 머릿속의 소음도 차츰 잠잠해진다. 그 느낌이 너무나 좋다.
'그렇구나. 고요함이란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가 아니야. 이 소리는 고요함의 소리인 거야.' _52p.
봄이 되면 곳곳에 새싹이 나고 일제히 꽃이 핀다. 누구나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눈부신 새싹을 보고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가 이토록 신비한 일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걸 신비롭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_94~95p.
십 대 소녀였을 때, 나에게 계절이란 배경으로 흐르는 단순한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계절의 순환 같은 건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가능하다면 일 년 내내 일정하게 쾌적한 온도 속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계절을 앞질러 나아갈 수도, 같은 계절에 계속 머물 수도 없다. 언제나 계절과 함께 변화하며, 한순간의 빛이나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에 마음을 가다듬고, 쏟아지는 빗소리에 몸을 맡기며 자신을 치유하기도 한다. ... (중략)... 우리는 계절의 순환 밖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안에 있다. 그러니 지칠 때는 흐름 속에 모든 것을 맡기면 되는 것이다.... _132~133p.
내가 선택한 길을 살아왔다. 그 점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다. 눈앞에 주어진 일을 해나가다 보면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하지만 일이 끊길 때면 내가 얼마나 불안정한 장소에 서 있는지 깨닫고 소름이 돋는다. 그래도 젊을 때는 '정 안되면 뭐든지 해서 살아가면 돼'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
'여기는 인생의 어디쯤일까? 건너편 기슭은 아직 멀었을까.....? 무사히 다다를 수 있을까.....?' 이내 불안해진다. _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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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