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깊이의 바다
최민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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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이라는 바다의 해변에 서 있을 뿐이다. 가끔씩 밀려와 발목을 적시는 파도에 마음이 가벼이 흔들리도록 자신을 내맡기면서, 언젠가는 저 바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헛된 희망에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 _183p.

주변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사라지는 사람들... 이 세계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음으로 다른 이들이 해를 입지 않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라고 말했던 노아. 도서정리협회에 노아의 명함을 들고 찾아온 소년 한별은 '불로불사'의 삶을 살고 있는 엄마가 사라졌다며 찾아달라고 찾아오게 된다. 대부분의 사건은 노아가 맡아서 해결했지만 한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경해는 한별의 엄마의 실종을 조사할수록 10년 전 '대실종'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날지 않고 바닥에 모여드는 비둘기, 그 비둘기를 무참히 살해하는 시민들... 그리고 경해의 주변을 찾아드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발견되는 유골과 유품들.... 계속되는 '대실종'. 존재하지 않는 문으로 사라진 이들은 저마다 절박한 사연이 있었고, 그러한 사연만으로도 공통된 점을 갖는듯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 지금의 세계에 존재하면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문제의 틈을 없애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모종의 조직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경해는 TV에서 아내의 반지를 보게 된다. 이야기는 짧지만 스피디하게 전개되고 등장인물이 많지 않지만 의뭉스러운 캐릭터들이 글의 긴장감을 더하게 된다. 상상력이 무럭무럭 자라게 했던 「발목 깊이의 바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바다의 해변에 서 있을 뿐이다.'라는 이 한 문장이 책장을 덮고도 한참을 조용히 소리 내어 읽어보게 된다. 미스터리하지만 스피디한 전개로 지루할 틈 없이 상상력을 자극했던 최민우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해보고 싶은 글이었다.

사라진 사람들, 반복되는 균열

과거와 현재, 현상과 환상을 틈입하는 응시의 흔적들

세상에는 여기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가 있어. 하지만 있게 된 이상 함부로 없앨 수 없지. 그렇다면 그 존재를 가장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 있단다. ... (중략)... 우리는 수수께끼를 다뤘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었다. 세계는 비유이자 실재이고, 수수께끼는 그 사이의 틈에서 발생한다. _15~16p.

"각자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내가 대답했다.

"그렇죠. 각자 말 못 할 사정이란 게 있죠. 그러니까 손님 같은 분이 먹고 살 테고, 다만 그 말 못 할 사정이란 게, 오래 끌어안고 살다 보면 좀 뭐랄까.... 자기 멋대로 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그런 사정 같은 거 깨끗이 털어버리면 좋겠지만, 사람 일이란 게 원체 그렇게 간단히 풀리지는 않거든요." _55p.

자기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는 종은 인간뿐이에요. 다른 동물들은 상대의 모습과,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에만 관심을 가져요. 생존에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자기가 자기를 볼 필요는 느끼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엄청나게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가 세상에 어떻게 보일지 알고 싶어 하죠. 하지만 거울은 좌우가 반대로 비쳐요. 그런 점에서 거울은 은유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가능하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다는 은유. _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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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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