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10시가 되면 아이들을 모두 다 재우고, 거실에 있는 기다란 스탠드 아래에 이상한 양탄자를 하나 깔아 내 영역을 확보한 다음, 그 밑에서 두 시간 동안 책도 읽고 웹툰도 보고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 들뜬 마음으로 시간을 아껴 가며 노는데, 자칫 너무 밝은 표정으로 놀고 있으면 지나가던 남편이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하자며 꼬실 수도 있기 때문에 라마단을 보내는 승려처럼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12시가 되면 다시 양탄자를 곱게 접어 내 흔적을 없앤다. _96p.
눈에 확 띄고 긴 제목, 닉네임이 분명한 '티팔'이라는 이름도 눈에 띄었지만 '인간관찰의기술'에 더 마음이 끌렸던 책이다. 회의 중에 이상한 소릴 내며 웃기도 하고, 학회에 갔다 편의점에서 먹던 떠먹는 피자가 맛있어서 학회를 째기도 한다. 낯선 이와의 대면은 죽기보다 괴로우며, 관심받는 걸 꺼린다. 결혼식은 허례허식 같아 싫다고 했다가 시어머니가 거품을 물게 했고, 잔소리가 많으신 시아버지께 '1일 1잔소리 제한'을 이야기해 시아버지를 기절시킨다. 하지만 이사한 집 열쇠는 제일 먼저 시어머니께 드리고, 시아버지가 해주시는 세차나 차 안의 실내 청소 등 타인의 손길을 반기는 티팔씨다.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심각한 표정으로 방해받지 않기 위해 꼼수를 쓰고, 갑작스러운 시댁 식구 방문 소식에 무작정 뛰쳐나가 5시간을 무작정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힐링을 하고 돌아온다. (남편의 큰소리쯤은 눈치 보는 척 두루뭉술 넘어가기! you win!!)
“이건 절대 내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상상일 뿐이에요”라고 귀엽게 말하며 새침하게 앉아있고 싶기 때문이다. _30p.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 편안한 소파, 잔잔한 음악과 상담가의 편안한 목소리를 상상했다면 그런 차분함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녀의 불안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그럼에도 정신과 상담가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하루하루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약간 허술한 듯 보이지만 시크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는 박티팔씨, 나와 별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웃픈이야기는 어쩌면 어떤 위로보다 더 깊고 진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VIP 되는 꿀팁도! ㅋㅋㅋ 읽다 보면 정신이 건강해지는 느낌? 저자의 다음 이야기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저자의 필명 ‘티팔’은 사회성이 부족하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을 일컫는 ‘스키조티팔 퍼스널리티 디스오더 (정신 분열형 성격 장애)에서 따온 정신과 은어다.
이번 학회의 나름 점수를 매기자면 100점 만점 중 100점이었다. CU편의점의 떠먹는 피자가 맛있었고, 가방에서 튀어나온 때 타월이 웃겼으며, 조커라는 친구가 생겼고, 추억의 모텔 냄새가 향기로웠다. 그리고 개 무덤을 잘 만드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_83p.
아이가 태어난 뒤, 아기가 싼 똥에 대한 이야기를 길고 자세하게 그리고 자발적인 즐거움에 차서 할 수 있는 대상은 시어머니밖에 없었다. 아이가 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반복해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들어주는 사람 역시 시어머니였다. 심지어 손자가 마음에 드시면 데려가서 똥강아지처럼 키워도 된다고 했더니 "아니, 다른 집 며느리들은 손주를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던데"라며 좋아했다. 무심하고 둔하지만 쿨한 면이 있는 나와, 불안하고 예민 섬세한 시어머니는 합이 잘 맞았다. _88p.
딸이 커서 결혼한다고 오면 나는 좀 살아보고 결혼해라. 또는 자아가 생기고 난 뒤 결혼해라. 행복하려고 결혼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하고 난 뒤에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_92p.
#정신과박티팔씨의엉뚱하지만도움이되는인간관찰의기술
#박티팔 #에세이 #웨일북 #임상심리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