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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그해, 여름 손님》 리마스터판 ㅣ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12월
평점 :

"나중에!" 그 한마디, 그 목소리, 그 태도.
헤어질 때 '나중에'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굳이 다시 만나거나 연락하고 싶지 않다는 무심함을 가린 냉정하고 퉁명스러우며 어쩌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말이라고 여겼다.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기억이 바로 이 한마디다. _10p.
소설도, 영화도 유명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퀴어 소설로 알려진 이 책이 개정의 개정을 거듭하며 북 커버가 바뀌고 최근 출간된 리마스터판으로 읽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의 해안가 별장, 여름이면 아버지의 번역 작업을 위해 여름마다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자신의 방을 내어주고 손님을 맞이하는 열일곱의 소년 엘리오, 그해 여름엔 곧 출간을 앞둔 24살의 젊은 학자인 올리버를 초대하고 미성년자인 엘리오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이고 인기가 많은, 자신과도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 올리버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묘하게도 올리버도 엘리오를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당기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로맨스 소설도 꽤 읽었고, 그중 퀴어 소설들도 간간이 읽어왔지만 격이 다른 글을 읽은 느낌이랄까? 일반적인 남녀의 사랑보다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지만 엘리오가 올리버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회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설렘, 울렁이는 감정들과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은 감정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춤을 추다 이내 나를 잠식해버리는듯한 기분이었다.
이 책이 단순히 퀴어 소설로서의 자극적인 면만 강조했다면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많이 읽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여름의 이탈리아, 별장, 여름 손님, 자유로운 분위기 등등 시작부터 반할만한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읽기 시작했을 때, '읽다가 덮고 싶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멈출 수 없는 글이었다. 철학, 음악 그들의 의식세계의 교감은 그들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함께 거닐었던 파리의 골목을, 서로에게 닿고 싶었지만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마주하게 된 현재에 이르러 그들이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게 될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놓칠 수 없는 감정과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다. 이들의 다음 이야기인 '파인드 미'를 읽어볼 차례다.
내 눈의 빛, 내 눈의 빛, 당신은 세상의 빛, 내 인생의 빛 같은 사람이에요. 내 눈의 빛 같은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고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의아했지만 말도 안 되는 그런 표현에도 눈물이 나왔다. _111p.
배신자. 그의 방문이 끽 하고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배신자. 우리는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가. 어디 안 갈게. 물론 그렇겠지. 거짓말쟁이.
나 역시 배신자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해변 가까이 있는 집에서 오늘 밤 나를 기다리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 매일 밤 나를 기다리는데 나는 올리버와 마찬가지로 그녀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_125p.
서점 주인은 스탕달의 <아르망스> 두 권을 내놓았다. 하나는 문고본이고 하나는 비싼 양장본이었다. 충동적으로 둘 다 구입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달아놓았다. 직원에게 펜을 빌려서 양장본을 펼치고 적었다. "Zwischen Immer und Nie, 침묵 속에서 당신에게 1980년대 중반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세월이 흘러 그가 여전히 이 책을 가지고 있다면 보고 가슴 아프기를 바랐다. _136~137p.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를 말끔하게 치워 주는 것 같았다. 나이 차이도 나지 않고 그저 두 남자가 키스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이내 녹아버렸다. 두 남자가 아니라 그저 두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 평등함이 느껴진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저 나이가 더 적고 더 많은 두 사람이 인간대 인간, 남자 대 남자, 유대인 대 유대인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_170p.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우정 이상일지도 모르지. 난 너희가 부럽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부모는 그냥 없던 일이 되기를, 아들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랄 거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네 입장에서 말하자면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있으면 끄지 말고 잔혹하게 대하지 마라. 밤에 잠을 못 이룰 만큼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건 끔찍하지. 타인이 너무 일찍 나를 잊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별로 없어져 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야!" _283~284p.
20년 전은 어제이고 어제는 좀 더 이른 오늘 아침일 뿐이다. 아침이 오려면 까마득했다.
"나도 너와 같아. 나도 전부 다 기억해."
나는 잠시 멈추었다. 당신 전부 다 기억한다면, 정말로 나와 같다면 내일 떠나기 전에, 택시 문을 닫기 전에, 이미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이 삶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장난으로도 좋고 나중에 불현듯 생각나서라도 좋아요, 나에게 큰 의미가 있을 테니까, 나를 돌아보고 얼굴을 보고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 줘요._3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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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