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뚜렷한 삶, 목표가 분명한 삶, 모두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내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냥 흐르는 대로, 끌리는 대로, 움직이는 대로 나를 맡기는 삶. 그렇게 천천히 물드는 삶, 그런 삶을 추구하는 내게 하이브로우는 그냥 삶의 흐름 중 하나이고 내가 강렬하게 끌리는 무엇이다. 그래서 수많은 후회와 번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 가장 좋은 취미이자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작업이다. 계산 없이, 계획 없이,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보면 언제나 그곳엔 나를 즐겁게 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있어 취미란 여기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기보다 그냥 삶의 일부인 셈이다. _135p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 모델, 배우, 14년 차 목수, 캠퍼이자 서퍼, 때론 보더...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이 꽤 많음에 놀랐다. TV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패밀리가 떴다를 방송할 당시 종종 봤던 그의 이미지가 너무 깊게 각인되었던 터라, '배우 이천희가 가구를 만든다고? 심지어 가구회사 대표?' (선입견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책을 쓰기로 하고도 한참을 망설였다는 그의 프롤로그는 자신의 삶과 가구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함에 있어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그의 이야기를 읽어줄 이들이 있는지를 걱정하는 문장으로 서두를 연다. 만들기 좋아하고, 구입하는 것보단 취향대로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시작한 가구 만들기가 14년 (출간 이후 시간이 꽤 흘렀으니 근 20여 년)이나 되었다면 대체 얼마나 좋아하길래?라는 궁금증이 들게 된다.
목수이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아빠는 뭐든 뚝딱 만들고 고쳐쓰기를 좋아하셔서, 지금도 버려진 물건을 꼭 주워다 다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기도 하고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두었다가 필요한 제품을 바로 만들어내기도 하신다. 지난해 스타렉스를 구입해서 차량 목공 인테리어를 나무만 사다가 1년 내내 직접 다 재단해서 만들기도 하셨으니.... 옆에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힘들게 저걸 왜 저렇게까지 하시지? 그냥 돈 좀 더 주고 맡기면 편할걸...'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손으로 뭔가 만드는 취미를 하는 사람들은 내가 필요해서 만들기도 하지만 상대를 살펴 그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이천희 생각보다 더 사람이 괜찮고 멋지더라.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헛바람이 들기도 쉬울 텐데 목공이라는 취미가 사람을 진중하게 만드는 걸까? 다음 생이 있다면 나무가 되고 싶었는데, 나무로 태어난다면 어떤 용도로 쓰이고 싶을까?라는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던 <가구 만드는 남자>.
얼마 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언니의 집들이에서 오래전 회사 동료였던 분이 만든 신 가구들을 직접 만져보고 써볼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의 가구가 만들어지는 동안 담기는 크고 작은 스토리들을 담고 있는, '세상 단 하나뿐인 나의 가구'가 언니의 공간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참 멋졌어!!!
만든다는 건,
고민하고, 노력하고, 결국 만나게 되는 것.
가구든, 취미든, 관계든, 삶이든.
만드는 과정이 그 가구만의 스토리가 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내가 사용하는 의자를 두고 '이거 백화점에서 50퍼센트 할인하기에 옳다고나 하고 샀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내가 이걸 만드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는데, 만들 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 (중략)... 가구를 만드는 과정은 삶을 만드는 과정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다듬고 깎으며 조립하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_32p.
여전히 가구를 '만드는'과정보다 '생각하는' 과정이 더 즐겁다. _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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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