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화자인 '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연인과의 이별에서부터 시작한다. 독일에서 유학한 유능한 재원으로 학교 졸업 후의 사회생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큰 사건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강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박세영이라는 학생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잠시 성 정체성을 의심하게 됐지만 그도 아닌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 무너지고 망가지는 걸 보며 쾌락을 느낀다. (얘 좀 이상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사냥감을 정하고, 은밀하게 진행되는 투명한 학살하는 '나'의 모습은 마지막 즈음, 그녀가 독일에서 알리스로 살던 시절의 회상으로 지금의 그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커튼 삼아 자신의 불행을 감추려 했던 '나'의 모습은 흡혈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라는 인물이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복도 심하지만 집요하기도 한다. 거짓말의 거짓말로 이어지는 글은 어느 순간에 이르러 붕괴되며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글은 두서 없이 보이지만 장면 장면이 짜임 있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취향의 글이 아님에도 꽤 매력적으로 읽었던 글이었다. 김사과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작품. 그의 연인이었던 성연우와의 이별 장면 이후 성연우가 '나'에게 하는 (독백?) 대사를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이 아니라 '나'라는 인물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 줄 알고 만나줬던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아마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듯...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에요. 여러분,

재능을 가진 인간들의 가장 큰 약점은 허영심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만큼, 딱 그만큼의 거품에 둘러싸여 있다. 그 거품, 즉 허영심은 재능의 부산물이자 함정. 허영심은 눈을 멀게 하고, 신경을 둔하게 한다. 한마디로 마비시키는 쾌락이다. 재능을 가진 인간들은 쾌락에 취약하다. 하여 이들은 뻔히 두 눈을 뜬 채 꼬임에 넘어간다. _70p.

하지만 나에겐 별로 그런 야망이 없다. 재능도 없는 데다가 정말이지 아무 야심이 없다. 나는 나의 이 소박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좋다. 나만의 완벽한 세계. 이따금 흥미로운 손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고, 취하고, 춤을 추고, 춤을 추다가.... 12시가 땡 치면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오는....

물론 거기 하나의 희생자가 남겠지.

하지만 얼른 치워버리면 된다.

박세영은 꽤 흥미로운 손님이었다. _82p.

도시는 아무나 유혹한다. 그 헤픈 존재는 누구든지 환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시 속 모두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어떤 인간들의 삶은 쥐보다 비천하고, 애완견보다 불행한 인간들은 부지기수. 그러나 어떤 인간들은 행복하다. 어떤 인간들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반면 허공에 꽁꽁 묶여 죽어가는 인간들도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모든 것은 네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죄다 네 탓이라는 말이다. 네 인생이 불행한 것도, 네 인생이 행복한 것도, 네가 산 채로 쪽쪽 빨리는 기분이 드는 것도, 네가 생선 가게로 가득한 천국의 고양이라 스스로 느끼는 것도 전부 다, 너 자신에게 달렸다.

_99~100p.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_120p.

나는 앞으로 아주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내 인생은 앞으로도 잘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하여, 세간의 소문과 달리 인생에 교훈 따위 없다는 것.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 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 있다. _187p.

작가정신 [소설, 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소설향’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중편소설 시리즈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 ‘향’이 가진 다양한 의미처럼 소설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에는 즐거움이자 위로로, 때로는 성찰이자 반성으로 서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작품은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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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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