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라보라 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 제목보다 부제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책이었다. 그 보라보라 섬? 남태평양 보라 보라 섬에서 9년을 살며 먼 북소리가 아닌 인생 종 치는 소리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소개 글을 책을 완독하고 나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해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올해는 또 뭘 하며 살았는지, 통장 잔고는 늘긴커녕 줄고 있는데 나이는 꼬박꼬박 먹어가고 있고 주변의 변화엔 내가 마음만 요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할 수 없는 상황,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꼼짝하기 싫은 마음. 그 괴리감 때문에 괜한 마음만 달달 볶으며 생각이 많은 하루하루...

한국을 뒤로하고 보라보라 섬에서 혼인신고만 하고 남편과 정착해서 살게 된 9년. 서로가 너무 달라 알아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웃어주시는 시어머니라니... 남편의 어릴 적 꿈이었다던 피자가게를 할 때도 하루 걸러 찾아오는 노숙자에게 아무 말 없이 피자를 만들어내주고, 영업종료 며칠 전 찾은 그에게 영업종료를 알렸더니 음악을 청해왔다는 그와 함께 밥 딜런의 음악을 들었다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예고도 없이 끊기는 전기. 냉장고 식재료들 중 녹거나 상하는 것 위주로 서둘러 먹어치우고, 전기가 끊겼을 경우 우선순위로 해야 할 일들도 척척해나가는 부부. 운치를 즐기며 뒷마당에서 식사를 하다 모기떼의 습격으로 응급실에 후송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족을 보러 가고 그녀를 만나러 오는 길이 너무도 멀다. 보고 싶다고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닌 것이다.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도 달려갈 수 없는 거리와 경제적인 상황에 며칠을 괴로워했지만, 바닷가에서 할머니를 추억하며 할머니 대신 아빠를 더 많이 사랑해드리겠다는 문장에 또 얼마나 울컥했던가...

내일의 일은 모르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대책 없는 낭만에 대하여

누군가에겐 꿈에 그리는 휴양 지겠지만 어디에나 그곳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 목록에 올라있기도 한 보라보라 섬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일상은 부러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현실적이면서도 하루하루 착실히 살아내고 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와 응원을 받았던 글. 생각지도 않게 글이 너무도 좋아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 꽤 많았던 책이었다. 이렇게 또 인생 에세이 작가 한 분을 알아가는 11월이다. 마음의 휴양 같은 책, 찬 바람에 휘청이는 마음에 영양제 같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산다는 건 바다 위에 떠다니는 배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식량이나 기름의 사용량을 예측해서 부족함 없이 미리미리 채워둬야 하기 때문이다. _013p.

외로운 사람은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서로의 외로움에 더 쉽게 공감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이 때문에 서로의 외로움에 더 쉽게 무감해지고 만다. _062p.

식사가 끝나자 오드레가 말했다. "우리는 너무 달라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겠구나." 아, 이 따뜻한 말 한마디. 그녀와 나 사이엔 분명 국경이 있지만 이 남자도 있다.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우리의 공통점은 결코 힘이 약하지 않을 것이다. _100p.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는 조언 속에서 선의의 마음이 거의 전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며 사는 삶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의 삶보다 더 가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는 언제쯤 서로를 설득하는 수고 없이,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불안감 없이, 자신만의 이유로 행복해지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_143~144p.

해가 바뀔 때마다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게 된다. 내가 언제 이 나이가 되었지. 그때마다 잊고 있었던 것은, 내가 나이 드는 만큼 부모님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일,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 가능한 태도로 표현하는 일. 아마 자주 짜증이 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반복해서 실패하겠지만,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내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_168~169p.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_260p.

#우리만아는농담

#김태연

#놀 #다산책방

#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