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복 때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67년 만에 가족들 앞에 나타났다. 노란 머리, 반짝이는 원피스, 요상한 깃털이 달린 밤색 모자. 할머니를 본 할아버지는 '잡년'이라며 광분했고,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아버지는 어미니의 등장 소식을 듣고도 들어오지 않다가 엄마의 연락 한 통에 30분 만에 나타나 엄마 앞에 오열한다. 무엇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교육하던 엄마는 시어머니로 인정하지 않다가 '60억'이야기가 나온 순간 바로 태도가 돌변하고, 35살의 나이에 이렇다 할 직업이 없던 동석과 안정적인 직장과 이혼 위자료로 받은 건물이 있는 동주까지 눈이 반짝인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해 60억 벌었으며, 그 돈을 가족들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떠나고 싶다고 나타난 것이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 가족에게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왜?! 이제서야 나타난 것일까? 60억을 들고 나타난 할머니, 온 가족은 할머니 모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도 죽일듯이 달려들던 모습이 점차 씁쓸한 마음이 드는건,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걸까? 어쩌면 할머니의 과거는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정말 할머니에게 60억이 있는 것인지 조사에 착수하는 고모, 엄마, 동주는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낸다.

67년 전. 최종태가 정끝순의 말을 믿어주었더라면 그들은 행복했을까? 남자들은 왜 궁지에 몰리면 자신의 여자를 핍박하는 걸까? 자신의 가문과 맞지 않는 여자라 집안에서 반대했던 끝순, 마침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누명을 뒤집어쓰고 핏덩이 같은 아이들을 두고 고향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마음은, 멀고 먼 타국을 돌고 돌아 자신의 아이들을 찾아오는 길을 얼마나 멀었을까? 할머니의 화려한 말발은 거짓인지 아닌지를 헷갈리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말을 믿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할머니는 정말 60억이 있는 걸까? 저마다의 계산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가족들의 이야기와 드러나는 할머니의 과거는 신파가 분명한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는데, 자꾸 코끝이 시큰해진다. 2012년 출간된 글이라고 한다. 책을 펼쳐 읽으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책을 미뤄둘 수 없었던 이 소설에 대해 할 말은 정말 많지만 정리가 되지 않는 관계로 조남주 작가의 추천사 몇 줄로 마무리한다.

남자들로 말미암은 거대한 균열을 바지런히 메우는 여자들. 그런데도 정숙하지 못하다고, 엄마 답지 못하다고, 계산적이고 영악하다고 비난받는 여자들. 지겹도록 구태의연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여성 비하와 낙인에서 손녀와 며느리와 자기 자신을 구해내는 유쾌한 할머니의 이야기. 『할머니가 돌아왔다』는 시대를 너무 앞섰던 소설이다. _조남주

'정의? 양심? 물론 중요하지. 가족, 친구, 사회, 국가, 다 소중한 가치야. 하지만 동석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돈이란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도 돈이야. 종교를 가지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겠다. 교회를 다녀도 좋고 절에 다녀도 좋고, 통일교도 괜찮고 이슬람도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데 다니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네가 믿을 건 신이 아니라 돈이야. 명심, 또 명심해라. 돈만 믿고 사랑해라. 부모, 형제, 친구들은 거짓말을 해도 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의도 양심도 행복도 힘도 사랑도 다 돈에서 나온다. 돈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아끼고 믿는 자만이 이 세상 마지막 승자가 될 수 있다.' _43~44p.

"아니다. 너희는 내 재산이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달자가 여기저기 안 알아본 곳이 없다. 내게 너희들 소식을 들려준 샌프란시스코 한인 교회 이준용 목사, 바로 부여에서 우리 아랫집 살던 꼬마 아이 말이다. 어제 그 아이와 통화를 했다. 달자가 거기까지 연락해서 내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것을 알아냈지. 그리고 달자는 다른 건 안 물어보고 택시 회사만 물어봤더군." ... (중략) 할머니는 과거를 의심하는 세력을 완벽하게 진압하는 동시에 할머니에 대한 충성 경쟁에 불을 지폈다. _98~99p.

말기가 어렵다고, 종이 말기가 어려운 부분이라고, 오려 붙이기를 하면 전체적인 느낌이 달라진다고, 언제나 말기엔 말기를, 접기엔 접기를 해야 작품이 살아난다고. 어렵다고 피하지 말고, 돌아가지 말고 끝까지 정면 승부를 해야 비로소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진정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맞는 얘기였다. _203p.

너까지 날 무시해? 내가 우습지? 그렇지?

내가 최달수야, 알아? 네까짓 게 감히 날 무시해? 이게 봐주니까 아주 꼭대기에서 놀려고 해. 돈 번다 이거지? 그까짓 더러운 돈 좀 번다 이거지? 한 번만 더 까불어봐. 아주 요절을 내 버릴 테니까. _257p.

'사랑은 수락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 자체를 수락하는 것이다. 그 존재의 모든 허약함까지도. 그렇다. 수락하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인간에 실망하지 않게 된다. 다만 서로 연민할 뿐이다.' _304~305p.

#할매가돌아왔다

#김범

#다산책방

#한국소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